[동아플래시100]“3·1운동 48인 재판 불가” 일본인 소신판사 보복 좌천

이진 기자 입력 2020-05-12 11:40수정 2020-05-1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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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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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건 공소는 차를 수리치 아니함.’

1920년 8월 9일 경성지방법원 특별법정에서 다치카와 지로 재판장이 내린 판결입니다. 손병희 천도교 교주를 비롯한 독립운동가 48인의 재판을 맡을 수 없다는 선언이었죠. 3·1운동을 이끈 지도자들을 재판할 수 없다는 결론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독립운동 지도자들을 처벌하려던 일제의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입니다.

다치카와 재판장이 ‘재판 불가’ 판결을 내린 계기는 약 한 달 전인 7월 중순 변호인 중 한 명인 허헌 변호사가 찾아냈던 이 사건 예심결정서의 허점이었습니다. 고등법원 특별형사부가 작성한 예심결정서에는 결론에 해당하는 주문(主文)에 ‘경성지방법원을 본 건의 관할재판소로 지정함’이라고만 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형사소송법에는 사건의 담당 재판부를 결정할 때는 관할재판소를 ‘지정’하고 ‘송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었죠.

예심결정서는 지방법원이 이 사건을 맡으라는 뜻이었지만 송치한다는 표현을 빼먹어 결정서 자체가 법률을 위반한 꼴이 됐습니다. 따라서 이 48인 재판은 사건을 내려 보낸 고등법원도, 사건을 받아야 할 지방법원도 맡을 수 없게 됐죠. 허헌 변호사는 재판부가 없어졌으니 피고들을 당장 풀어줘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이른바 ‘공소불수리’ 신청이었죠.
일제 재판장으로부터 공소불수리 판결을 이끌어낸 허헌 변호사

검사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결정서 주문에는 사건을 송치한다는 말이 없지만 해설에 해당하는 이유(理由)에는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이 사건은 경성지방법원에서 다룰 수 있다, 만약 재판부가 맡지 않으면 피고들의 고생만 더 길어질 뿐이다, 라고 대응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설마 같은 편인 재판부가 공소불수리 신청을 받아들이겠느냐 하는 계산도 했겠죠.


그러나 다치카와 재판장이 내린 결론은 뜻밖에도 ‘재판 불가’였습니다. 8월 10일자 기사 제목 ‘가관할 고등법원의 면목’은 고등법원의 허술한 예심결정서를 꼬집는 표현이었죠. 재판장은 이 재판뿐만 아니라 예심결정서에 똑같은 결함이 있던 창원사건, 신의주사건, 수원사건, 안성사건 등 경성지방법원으로 배정된 3·1운동 관련 재판도 모두 마찬가지 판결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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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카와 재판장은 ‘재판 불가’ 판결문을 2시간가량 읽어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법리가 잔뜩 들어간 내용이어서 적지 않은 방청객들이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이 판결문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지만 검사의 이의제기를 반박하는 형식으로 핵심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먼저 △사건 기록을 넘겼으면 된 것 아니냐는 항변에 ‘사건기록을 넘겼다고 재판할 권리까지 넘어온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관할재판소를 지정한 것이 곧 송치했다는 뜻이고 이유에는 송치한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는 주장에는 ‘지정이라는 말 속에 송치한다는 뜻을 포함시킬 수 없고 송치라는 단어는 주문에 들어 있어야 한다’고 단언했죠. 또 △재판을 맡지 않으면 사법절차에 차질이 빚어지고 상급법원의 결정에 항명하는 것이 된다는 지적에는 ‘예심결정서 오류로 빚어진 재판 차질은 지방법원이 책임질 일이 아니며 지방법원은 상급법원의 지시에 따라 판결하는 기관이 아니다’라고 물리칩니다.
재판 불가 판결을 받은 뒤 용수를 쓰고 서대문감옥으로 돌아가는 48인

결국 다치카와 재판장은 한 달 간 고심 끝에 ‘정치적 판결’이 아니라 ‘법률과 양심에 따른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는 동아일보 기자가 찾아가 ‘공소불수리 판결로 조선사람 사이에서 유명해졌다’고 하자 ‘법률은 절대적으로 신성하다’고 당당하게 답변했습니다.

그렇지만 후폭풍은 아주 컸습니다. 다치카와 재판장은 곧 좌천당해 내내 한직을 떠돌다 법복을 벗어야 했죠. 사법부에도 보복성 인사조치가 뒤따랐습니다. 독립운동가 48인도 2심에 가서 상당수가 유죄판결을 받았고요. 법보다 주먹이 앞선 식민지의 현실이었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원문

可觀(가관)할 高等法院(고등법원)의 面目(면목)
四十八人(48인) 公訴(공소)도 不受理判決(불수리판결)

작 구일 뎡동법뎡에서 수원사건도 함끠
공소는 맛츰내 수리치 안키로 판결언도
안성사건 일백이십륙인의 판결은 금일

수안사건의 공소불수리의 판결이 잇슨 후 하로 동안 일요일을 지난 후 작 구일 아츰에 뎡동특별법뎡에는 또다시 조선 독립선언사건의 손병희 외 사십칠인과 수원사건(水原事件) 김현묵(金賢黙) 외 이십팔 명에 대한 공소불수리 문뎨의 판결이 열니엇다. 가튼 독립운동의 사건이라도 이 사건만은 온 조선민족의 주목이 한 곳에 모히는 까닭인즉 지나간 칠일 수안사건 때에는 방텽 는 사람이 불과 이삼인이더니 금번에는 재작일 저녁부터 디방법원 압헤 이십여 명이 모히어 입장권을 어더 가지고 여달시 젼에 방텽석에는 갓득이 차고 더욱 금번에는

부인 방쳥자가 만흔 것도 한 특색이엇다. 재판댱 이하 판사들은 그 문뎨가 발생한 이후 근 이십일을 두고 준비하야도 아즉 준비가 못다 되엿는지 뎡각보다 한 시 사십 분이나 늣게 아홉 시 사십 분에 겨우 개뎡되엿다. 립쳔 재판댱 이하 각 리원이 젼과 가치 착석한 후 피고 일동의 씨명 뎜검을 맛친 후 재판댱은 먼저 손병희는 호출하얏스나 출두치 아니하얏슴으로 결석한대로 재판하겟다고 선언하매 경검사(境檢事)가 이러서더니 젼례와 가치 여긔 대하야 대뎡 팔년

고등법원 특별형사부 제일호로 예심 결뎡된 손병희 이하 사십팔인에 관한 독립선언서 배부사건 정치뎍 불온행동에 대하야 심리하기를 바란다고 말한 후 립쳔 재판댱은 다시 본 건에 대하야 재판소에서 공소불수리의 문뎨에만 졔한하야 변론을 허한다 매 경검사가 힘업는 목소래로 자긔는 젼일에 변론한 외에 다시 한말이 업노라 말하고 안즈매 이와 대립하야 론전하는 변호사 허헌(許憲)씨도 역시 젼일에 변론한 외에 더 할 말이 업노라 말한 후

재판장은 다시 손병희 이하 사십팔인과 김현묵 이하 이십팔인의 사건에 대하야 본건 공소는 엇던 것이든지 모다 수리치 안는다고 선언한 후 재판댱이 읽고 통역생이 번역하야 약 두 시간 동안이나 계속하야 판결서를 읽엇다. 원래 론리가 어려운 법률론이요 읽기가 어려운 까닭에 그만콤 조선말이 능난하다는 등정(藤井) 通譯生(통역생)도 때때로 땀빠지는 구절이 만히 잇섯다. 이와 가치 지리한 두 시간 동안에 방텽석에는 어졔 저녁 이래로 표를 엇기에 단잠을 자지못한 까닭인지 폭폭

조는 사람도 업지 아니하얏다. 길고 긴 판결서를 읽기를 마치고 끗흐로 재판댱은 다시 그 판결서의 뜻을 부연하야 결국 그 뜻을 말하면 경성디방법원에서 판결권은 잇스나 송치의 결뎡이 업기 때문에 본원에서는 법률에 뎍당하게 이를 수리할 자이 아니라고 말한 후 폐뎡하얏는대 당일 츌댱한 변호사는 허헌(許憲) 대구보(大久保) 최진(崔鎭) 정구창(鄭求昌) 김우영(金雨英) 박승빈(朴勝彬) 김정묵(金貞黙) 제씨가 출석하얏섯다. 방텽인들은

페뎡한 후에도 피고들의 나가는 얼골을 좀 보랴고 텰도부 구내 또는 문압헤까지 느러섯는대 경관들은 연방 모혀섯는 군중을 헤치는 것도 가관이엇다. 이리하야 독립운동의 수령 사십팔인의 사건도 결국 공소는 수리치 안케 되엿스며 오날도 오젼 여덜 시부터 안성사건 최은식(崔殷植) 외 일백이십오인에 대한 공소문뎨의 판결이 잇다더라.

현대문
볼 만한 고등법원의 체면
48인 공소도 불수리 판결

어제 9일 정동 법정에서 수원사건도 함께
공소는 마침내 수리하지 않기로 판결 언도
안성사건 126명의 판결은 오늘

수안사건의 공소불수리 판결이 있은 후 하루 동안 일요일을 지낸 뒤 어제 9일 아침에 정동 특별법정에는 또다시 조선 독립선언사건의 손병희 외 47인과 수원사건 김현묵 외 28명에 대한 공소불수리 문제의 판결이 열렸다. 같은 독립운동의 사건이라도 이 사건만은 온 조선민족의 주목이 한 곳에 모이는 까닭에 지난 7일 수안사건 때는 방청석은 사람이 불과 2, 3명이더니 이번에는 그저께 저녁부터 지방법원 앞에 20여 명이 모여서 입장권을 얻어 가지고 8시 전에 방청석은 가득 차고 더욱 이번에는 부인 방청자가 많은 것도 한 가지 특색이었다.

재판장 이하 판사들은 이 문제가 발생한 이후 거의 20일을 두고 준비해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 정각보다 1시간 40분이나 늦은 9시 40분에 겨우 개정됐다. 다치카와 지로 재판장 이하 각 관리가 전과 같이 착석한 뒤 피고 일동의 성명 확인을 마친 후 재판장은 먼저 손병희 이름을 불렀으나 출두하지 않았으므로 결석한 대로 재판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자 사카이 죠자부로 검사가 일어서 전례와 같이 이에 대하여 다이쇼 8년 고등법원특별형사부 제1호로 예심 결정된 손병희 이하 48인에 관한 독립선언서 배부사건 정치적 불온행동에 대하여 심리하기를 바란다고 말하였다. 다치카와 재판장은 다시 이 건에 대하여 재판소에서 공소불수리의 문제에만 국한하여 변론을 허가한다고 하자 사카이 검사가 힘없는 목소리로 자신은 전날 변론한 외에 다시 할 말이 없다고 말하고 앉았다. 이에 맞서 논전하는 변호사 허헌 씨도 역시 전날 변론한 외에 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다시 손병희 이하 48인과 김현묵 이하 28인의 사건에 대해 이 건 공소는 어떤 것이든지 모두 수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후 재판장이 읽고 통역이 번역해 약 2시간 동안이나 계속해 판결서를 읽었다. 원래 논리가 어려운 법률이론이고 읽기가 어려운 까닭에 그만큼 조선말이 능란하다는 후지이 통역도 때때로 진땀나는 구절이 많이 있었다.

이와 같이 지루한 2시간 동안에 방청석에는 어제 저녁 이후로 표를 얻으려고 단잠을 자지 못한 까닭인지 폭폭 조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길고 긴 판결서를 읽기를 마치고 끝으로 재판장은 다시 그 판결서의 뜻을 설명했다. 결국 그 뜻을 말하면 경성지방법원에서 판결권은 있지만 송치의 결정이 없기 때문에 본원에서는 법률에 맞게 이를 수리할 것이 아니라고 말한 후 폐정하였다.

이날 출정한 변호사는 허헌 오쿠보 최진 정구창 김우영 박승빈 김정묵 여러분이 출석했다. 방청인들은 폐정한 후에도 피고들이 나가는 얼굴을 좀 보려고 철도부 구내 또는 문 앞에까지 늘어섰는데 경관들은 모여서는 군중을 흩어지게 하는 것도 볼만했다. 이리하여 독립운동의 지도자 48인 사건도 결국 공소는 수리하지 않게 됐으며 오늘도 오전 8시부터 안성사건 최은식 외 125인에 대한 공소문제의 판결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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