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모임만 할수있나”… 낚시에 게임도 OK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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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아바타 모임 해보니

“선배, 기약 없이 미뤄지는 팀 워크숍, 가상현실(VR)에서 해보는 게 어때요?”

“그래도 야유회는 밤새 부어라 마셔라 해야 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그럴 순 없고…. 못 본 지 오래됐으니 한번 해볼까?”

6일 본보 IT팀은 조금은 특별한 ‘랜선 모임’을 갖기로 했다. 랜선 모임에 주로 활용되는 영상 회의, 그룹 전화 등 업무용 도구들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불가피하게 내 집 일부가 영상에 비치는 등 사생활 침해가 서로 부담스러웠다. 집에 어린아이가 있다는 점도 업무용 도구 활용에 걸림돌이었다. 서로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도 가상현실이라는 장소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소일거리를 하는 등 워크숍 특유의 동질감 있는 분위기는 살리고자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증강현실(AR) 기반 아바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제페토’를 통한 가상현실 워크숍이었다.

전 세계 이용자 1억3000만 명, 그중에서도 10대 이용자가 80%인 이 서비스를 택한 이유에는 이른바 ‘요즘 것들’의 문화와 취향을 체험해 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책상 앞 먹을거리나 마실거리 준비는 각자 취향대로 하기로 했다.

애플리케이션(앱) 장터에서 제페토를 내려받아 실행하자 ‘셀카’를 찍으라는 안내가 나왔다. 삼성전자 갤럭시폰에 접목된 ‘AR 이모지’ 기능처럼 내 얼굴을 본뜬 아바타를 만들기 위해서다. 제페토와 유사한 아바타 SNS는 많았지만 실제 내 얼굴을 촬영해 이를 기반으로 가상현실 속 나를 만들어주는 서비스는 찾기 어렵다.

생성된 아바타를 보고 놀랐다. 수염이 나 있어서다. 새삼 면도를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안경도 인식했다. 아바타 생성에 디테일이 느껴졌다. 눈, 코, 입 등을 수정할 수는 있지만 손대지 않기로 했다. 그게 현실의 나와 더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다만 기본 제공되는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대신 세미 정장을 구매해 입긴 했다. 주어진 사이버머니로 내 아바타를 꾸미다 보니 애정이 생겼고 덩달아 다른 팀원들의 모습도 궁금해졌다.

이제 야유회 장소로 향할 시간. 쇼핑몰, 지하철 등 27개의 공식 맵 중에서 워크숍의 형식은 지키고자 카페테리아가 있는 교실 맵으로 향했다.

그렇게 아바타로 만난 30대 초반, 중반, 후반으로 구성된 3명의 팀원들은 웃음부터 터뜨렸다.

▽신무경 기자=반갑습니다. 선배는 평소처럼 슈트를 입으셨네요. 화면 하단에 마이크 버튼을 누르시면 음성 연결이 됩니다.

▽유근형 팀장=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곽 기자는 실제 얼굴과 이모티콘이 닮았네.

▽곽도영 기자=ㅋㅋ. 화면 왼쪽 하단에 떠있는 컨트롤러로 움직이시면 돼요. 이제 해변가가 딸린 비치타운 맵으로 가볼까요. 거기서 같이 셀카 찍어요.

가상현실 속 해변을 만나자 팀원들은 대화는 뒷전에 둔 채 바다로 뛰어들었다. 진짜 현실 속 해변을 만난 사람들처럼 들뜬 기분을 안은 채.

잠깐의 개인플레이(?)를 즐긴 뒤 기념사진 촬영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사진 찍는 법까지는 알겠는데 한 화면에 팀원 셋 모두를 담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촬영자가 어떤 구도로 찍으려 하는지 상대방은 알 길이 없으니 어느 위치에 서 있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둔감한 손가락을 탓할 수밖에. 결국 모바일 조작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답이었다. 겨우 한 앵글 안으로 모여들었다.

그러고는 ‘김치’를 외쳤다. 찍어놓고 본 첫 사진은 카메라 앞에서 영락없이 차렷 자세에 무표정한 대한민국 아저씨 같았다.

▽신=이번에는 포즈 한번 취해 볼까요.

▽유=어떻게 하는 거야?

▽곽=화면 오른쪽 하단에 사람 모양을 터치하면 몸짓을 선택할 수 있어요.

우여곡절 끝에 랜선 워크숍 시작 30여 분 만에 제대로 된 첫 단체샷이 나왔다. 오랜 시간에 걸쳐 겨우 찍은 작품인 데다 IT팀 구성 5개월여 만에 찍은 첫 사진이라서인지 왠지 모르게 애착이 갔다. 아바타에 그런 감정이 생긴다는 것이 조금은 신기할 따름이다.

내친김에 낚시도 해보기로 했다. 터치 몇 번으로 낚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처음에는 캐릭터를 이동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던 팀장은 가르쳐주지도 않았건만 낚싯대를 스스로 꺼내 들었다. 낚시와 아저씨는 한 몸처럼 유기적이었다. 비록 물고기는 한 마리도 낚지 못했지만.

▽유=낚시보다 더 액티브한 게임 요소가 들어간 맵은 없을까?

▽곽=스키점프라는 맵으로 가볼까요?

▽신=방을 새로 만들어서 초대하겠습니다.

이 맵에서는 앞서 낚시를 하듯 터치 몇 번으로 스키점프를 즐길 수 있었다. 내 점수는 484점. 모바일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팀원들은 점프와 착지의 타이밍을 못 맞춰 눈 속으로 파묻히고 말았다. 점수는 0점. 그러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유=스키점프도 재밌네. 또 다른 맵을 한번 체험해 볼까?

▽곽=시간이 금방금방 가네요. 딸아이 저녁 차려 줘야 하는데….

▽신=‘마지막으로’ 벚꽃정원이라는 맵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문득 이렇게 가다가는 가상현실 워크숍이 마무리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낚시, 스키점프 같은 게임적인 요소가 없기를 바라며 새로운 방을 개설했다. 굳이 오프라인 회식으로 비유한다면 ‘4차’로 향하는 기분이랄까.

제페토에서는 기본 제공하는 공식 맵 외에 직접 맵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이른바 ‘커스텀 맵’으로 유저 스스로가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뛰어놀 공간을 만들어 업로드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을 모티브로 한 맵이라든지 방탄소년단(BTS) 팬들이 만든 맵, 방 탈출 게임을 모티브로 한 맵 등이 있다. 최근 청와대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들이 많이 즐기는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통해 가상 청와대를 구현한 것처럼 말이다. 내친김에 동아일보 IT팀 맵을 만들고자 ‘빌드잇’이라는 별도 프로그램을 내려받기까지 했으나 가상현실 야유회가 자주 일어날 것 같다는 오싹한 기분이 들어 포기하고 말았다.

▽유=저기 히노키 탕에 들어가서 사진 찍자!

▽곽=….

▽신=곽 기자가 지쳐 보이네요.

▽유=건물 위층으로 올라가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네. 여기서 식사하는 모습을 촬영하면서 마무리하자.

▽곽=마치 회식에 3차, 4차까지 끌려오는 기분이에요.

▽유=2층에서 1층으로 뛰어내릴 수도 있네!

▽곽=….

▽신=ㅋㅋ.

사회생활 8년 만에 처음 해본 가상현실 야유회. 2시간여 동안 말 그대로 재밌게 놀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팀원 모두 카카오톡 배경사진을 가상현실 속에서 찍은 사진들로 바꿨다. 비록 가상현실이지만 추억과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 아닐까.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은 가상 현실에서도 통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해본 시도였지만 만나지 않고도 만난 듯 팀워크를 다질 수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신무경 yes@donga.com·유근형·곽도영 기자
#가상현실#랜선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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