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아버지들, 요리와 살림살이에도 관심 “고추장은 내손으로 담근 것”

뉴시스 입력 2020-05-08 09:45수정 2020-05-0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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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5월호 소개
자식 끔찍히 사랑하고, 집안일 속속들이 살펴
퇴계 이황, 아들에 겨울 대비 식재료 준비 지시
연암 박지원 "고추장은 내손으로 담근 것" 편지
서유구, 조선 최대 음식백과사전 '정조지' 저술
흔히 조선시대 양반 남성들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들이 있다.

부엌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을 것이며, 양육은 아내에게 맡긴 채 자식에게는 도통 무심할 것이고, 소소한 집안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런 예상은 ‘유교적 가부장제’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다. 실제로 많은 기록에서 드러나는 조선의 아버지들은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고, 집안일을 속속들이 살피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8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조선의 아버지들은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재산을 증식하고, 노비를 관리하고, 제사를 받들고, 가족들이 먹을 곡식과 반찬거리를 마련하는 일에 성심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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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들 교육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몫이었다.

퇴계 이황은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겨울을 대비해 식재료를 어찌 준비할지를 세세히 지시한다. 연암 박지원은 서울에 있는 큰아들에게 “쇠고기 장볶이를 보냈건만 맛이 어떤지 한 마디도 없느냐”며, “고추장은 내손으로 담근 것이다”라고 편지를 쓴다.

조선 후기 문신 서유구는 조선 최대 음식백과사전인 ‘정조지’를 저술했다. 자신의 살림 경험과 함께 한·중·일 3개국 245권을 참조해 1200여 개의 레시피를 실었다. 대제학을 지냈던 서유구의 할아버지 서명응 역시 어머니 밥상에 오를 음식은 직접 요리했다고 한다. 효심 가득한 가풍이 열매를 맺은 셈이다.

조선 아버지들의 자식 사랑은 역병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에서도 두드러진다.

조선시대 선현들이 남긴 개인적인 기록인 일기류에는 이런 아버지들에 대한 기록이 다수 남겨져 있다. 많은 사람을 빠른 속도로 감염시켜 떼죽음에 이르게 하는 감염병은 당시 의료체계로서는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없는 병이었다. 그래서 이를 역질, 역병, 돌림병이라고 불렀다.

치료법이 있다고 해도 경제적 이유로 약 한 첩 제대로 써보기도 못했다. 전란으로 인해 제대로 의사 한 번 만나보지 못하는 사례도 허다했다. 조선시대 평균 수명은 24세였다. 그러니 조선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죽음을 자주 경험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살려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아무 소용없이 자식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만 했다.

‘계암일록(溪巖日錄)’의 저자인 김령은 1604년 큰 아이를 이질로 잃는다. 죽은 아이를 스스로 묻고 돌아온 김령은 비참한 심경으로 한동안 일기조차 쓰지 못한다. ‘초간일기(草澗日記)’의 저자 권문해는 50세가 넘어 얻은 귀한 딸을 역병으로 잃는다.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역병으로 갑자기 죽었던 사람이 혹 깨어나는 경우도 있다”며 다시 살아나기를 바랄 정도였다.

병에 걸린 자식을 살리기 위한 아버지의 노력도 처절하다.

‘성재일기’의 저자 금난수는 왕자도 살리지 못한 역병에 걸린 딸 종향에게 약과 뜸을 써서 완쾌시킨다. ‘쇄미록(瑣尾錄)’의 저자 오희문은 전란 중 막내딸이 병을 얻자 딸이 먹고 싶어하는 것들을 구하기 위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백방으로 수소문 한다.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의 저자 김택룡은 아들의 약재를 구하다가 중국 약재라 가장 비싸고 구할 수가 없다는 회신을 받고는 상심해 답장도 쓰지 않는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이 같은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5월호를 발행했다.

이번 호 웹진 편집장을 맡은 공병훈 교수는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들이 보여주는 사례는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안동=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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