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태평양을 오가는 민물장어[김창일의 갯마을 탐구]〈44〉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입력 2020-05-08 03:00수정 2020-05-0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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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단골 장어구이 음식점에서 아내와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나는 민물장어(뱀장어)가 어떻게 양식되는지를 설명했고, 듣고 있던 아내는 “이게 민물장어였어?”라는 말로 놀라게 했다. 10년 넘게 다닌 집에서 지금껏 바닷장어(붕장어)인 줄 알고 먹었단다. 간판이나 메뉴판에 민물장어, 풍천장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장어구이’, ‘장어탕’으로만 표기돼 있으니,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천에 사는 장어를 흔히 민물장어, 풍천장어로 부르지만 표준명칭은 ‘뱀장어’다. 고향은 북태평양으로 3000km나 떨어진 곳에서 태어나 한반도까지 온다. 하천으로 올라온 뱀장어는 낮에는 늪 등지의 돌 틈이나 진흙에 숨어 있다가 밤에 움직인다. 민물에서 5∼12년 정도 살다가 번식을 위해 북태평양으로 간다. 바다로 나가기 전에 강 하구의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역(汽水域)에서 2, 3개월 머물며 염분 농도 적응기를 가진다. 삼투조절 능력이 생기면 자신이 태어난 괌 인근의 마리아나 해역으로 여정을 떠난다. 6개월 동안 먹이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산란장에 도착하면 위와 장이 퇴화되어 거의 사라지고, 생식기관이 빈자리를 채운다. 산란 후 곧바로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태평양에서 부화된 뱀장어 새끼는 해류를 쉽게 탈 수 있도록 대나무 잎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댓잎장어’라 한다. 6개월 이상을 해류에 몸을 맡긴 끝에 우리나라 연안에 도착하면 실처럼 길쭉한 형태로 탈바꿈하여 ‘실뱀장어’가 된다. 실뱀장어 잡이를 관찰하기 위해 강화도 황산포구를 찾았다가 어촌계장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실뱀장어는 봄에 잡습니다. 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가르는 염하수로를 지나서 한강, 임진강, 예성강으로 올라가죠. 황산포가 길목이니까 예전에는 실뱀장어 어선이 바다를 가득 메울 정도로 성황을 이뤘어요. 요즘은 양이 줄어서 예전만 못합니다. 이제는 수입에 의존합니다”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어촌계장 말처럼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뱀장어는 0.2g의 실뱀장어를 잡아서 6개월에서 1년 정도 키워서 출하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지천에 널려 있어도 뱀을 연상시키는 외형 때문에 일상적으로 먹지 않고 약용으로 이용했다. 1910년에 발간된 ‘한국수산지’ 기록에 “뱀장어는 종래 조선인의 기호식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획에 종사하는 자가 없었고, 명치27년(1894년)경 일본 어업자들이 낙동강 입구에서 이 어업을 개시하였다”고 했다. 이후 낙동강, 섬진강, 영산강 등지에서 일본인들에 의한 어획과 양식이 이뤄지면서 뱀장어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1937년 7월 11일자 동아일보에는 ‘배암장어는 이왕에는 아이들의 병난데나 구어먹이엇습니다. 요사이 와서는 일반으로 상등맛으로 알어 먹게 되엇습니다’라는 기사가 나온다.
뱀장어가 드나들던 주요 길목이던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 주요 하천이 하굿둑으로 막히면서 개체수가 줄고 있다. 댐이나 하구언에 막혀 바다로 나가서 산란하지 못하고 죽기도 하고, 강을 오르지 못하고 하구에 머물러 살기도 한다. 생명이 오가던 물길의 단절로 북태평양에서 찾아온 손님은 목적지에 닿지 못하고 강어귀를 헤매고 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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