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자도 소비자도 모른다”…알쏭달쏭 ‘재난지원금 사용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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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5월 8일 00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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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안돼. 여긴 연 매출 10억이 넘어서 못 받아요”

경기도의 한 대형마트에 입점한 옷가게 주인 A씨는 ‘재난기본소득 카드로 결제가 되냐’는 말에 “사용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A씨는 “소상공인은 맞지만 이 점포는 연 매출이 10억이 넘어서 재난기본소득 사용처에서 제외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한 ‘재난지원금’ 사용이 본격화했지만 지급방식과 지역에 따라 사용처가 제각각인 탓에 유통채널과 소비자 사이에서 크고 작은 혼란을 빚고 있다.

심지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대기업 건물에 입점한 소상공인은 재난지원금 사용처에서 제외된 반면, 일부 지자체는 수조원대 매출을 굴리는 이커머스에서 재난지원금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허용해 ‘형평성 논란’까지 불거졌다.

◇서울시 재난긴급생활비, 선불카드 vs 서울사랑상품권 왜 다르죠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각 지자체의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된 이후 대형마트, 이커머스, 프랜차이즈, 배달 애플리케이션 등 유통채널들은 전국에서 쏟아지는 사용처 문의 전화에 진땀을 빼고 있다. 재난지원금의 사용처가 지자체와 지급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다.

서울시 ‘재난긴급생활비’가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지난 3월30일부터 중위소득 100% 이하 191만 가구 중에서 정부 지원을 받는 73만 가구를 뺀 총 117만7000가구에 가구 구성원 수에 따라 30만원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민은 모바일 서울사랑상품권과 선불카드 중 하나를 선택해 신청할 수 있다. 재난긴급생활비는 접수된 날로부터 7일 후 지급된다.

문제는 사용처다. ‘서울사랑상품권’을 받은 시민은 오직 자치구 내의 제로페이 가맹점에서만 생활비를 쓸 수 있다. 제로페이 가맹점이라도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물론 이커머스, 프랜차이즈, 기업형슈퍼마켓(SSM) 등은 사용할 수 없다. 사용처는 철저하게 동네상점(소상공인)이나 전통시장으로 한정된다.

반면 ‘선불카드’는 백화점과 일부 대형마트, 특정 브랜드 매장을 빼고는 사실상 사용처의 제약이 없다. 쿠팡·G마켓·11번가 등 사업자의 주소지가 서울이라면 이커머스도 자유롭게 결제할 수 있다. 사용지역도 ‘서울 전역’으로 상품권보다 훨씬 넓다.

삼성디지털프라자, LG전자베스트샵, 기업형슈퍼마켓(SSG)에서 쇼핑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이소와 올리브영에서 물건을 사거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배달 애플리케이션으로 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있다. 대형마트는 이마트, 롯데마트에서 사용이 불가능하지만 홈플러스는 된다.

똑같은 재난긴급생활비인데 사용처가 극명하게 다른 이유는 ‘발급 주체’가 달라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선불카드는 신한카드가 발급하고 재원을 대기 때문에 사용처가 비교적 넓고 유연하다”고 설명했다. 발급기관은 서울시지만 민간 카드사의 재원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제한폭이 상대적으로 좁다는 설명이다.

반면 서울사랑상품권은 취지부터 다르다. 사익보다는 공익성이 짙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사랑상품권은 소상공인 지원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설계한 ‘지역상품권’의 일종”이라며 “서울시뿐만 아니라 자치구도 재원을 출연해 만들었기 때문에 사용처와 지역이 상당히 제한된다”고 말했다.

두 재난긴급생활비의 차이를 자세히 숙지한 소비자가 적다 보니 엉뚱한 유통채널이 ‘민원센터’ 역할을 도맡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선불카드를 받은 다른 가족은 결제가 되던데 왜 상품권은 결제가 안 되냐는 항의를 하루에도 수차례 받고 있다”며 “관(官)에서 정한 정책을 민간 유통채널이 설명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자체 따라서도 사용처 제각각…유통채널 “파악 어렵다”

지자체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하면 재난지원금의 사용처는 더 알쏭달쏭해진다. 지자체마다 재난지원금 사용 기준이 달라서다. 급기야는 소상공인은 재난지원금 사용처에서 제외되고 이커머스는 혜택을 받는 일까지 나왔다.

경기도는 지난달 9일부터 신청을 받아 1인당 1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경기도민은 신용카드, 경기지역화폐, 선불카드 중 한 가지 유형을 골라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지급 방식은 세 가지이지만 사용 조건은 ‘연 매출 10억원 이하 매장’ 하나다. 단 백화점, 대형마트, SSM, 프랜차이즈 직영점 등은 제외된다. 이커머스 등 온라인쇼핑몰에서도 결제를 할 수 없다.

재난지원금 사용법이 다른 것은 서울시와 경기도뿐만이 아니다. 17개 광역자치단체마다 제각각의 사용 기준을 가지고 있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도 이제서야 전국 지자체의 재난지원금 사용처를 정리하고 있는 판국이니 당장 급한 사용처 파악은 유통채널 몫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거의 모든 재난지원금 사용처에서 제외되지만, 준중형 마켓처럼 애매한 회색지대가 있다”며 “어떤 재난지원금은 사용이 되고 어디는 안되고 지자체마다 다른데 중앙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점포별로 지자체에 문의를 넣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대형마트 안에 입점한 소상공인을 두고도 지자체별로 사용처가 엇갈린다. 서울시는 ‘연 매출 10억원’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에 대형마트에 입점한 소상공인 매장에 한해 선불카드를 쓸 수 있다.

반면 경기도는 소상공인의 소득과 관계없이 입점한 대형마트가 연 1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면 소상공인도 함께 재난기본소득 사용처에서 제외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지자체마다 점포 입점 소상공인에 대한 기준이 달라서 공식적으로 (사용처가) ‘된다, 안 된다’ 말하기 어렵다”며 “재난지원금의 종류와 기준이 워낙 많아서 파악이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백화점, 대기업 건물에 입점한 소상공인은 재난지원금 사용처에서 제외됐지만 수조원대 매출을 올리는 이커머스는 사용처에 포함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서울시는 이커머스 사업자의 주소지가 서울인 경우에 한해 선불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도록 문을 열어줬다. 이커머스에 입점한 소상공인을 사용처에서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커머스가 직매입해 판매하는 상품도 제한 없이 결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는 코로나19 기간에 호황을 누린 업종인데 불황을 겪은 백화점·대형마트는 제외하고 재난지원금 혜택을 몰아주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며 “소상공인이어도 대형마트나 대기업 건물에 입주하면 사용처에서 제외되는데 재난지원금 도입 취지에도 어긋나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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