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전사자 37명 대 1500명, 사실상 학살”… 조선의 현실은?

이진 기자 입력 2020-05-05 11:40수정 2020-05-1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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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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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은 10일간에 3차례 ○군과 교전하여 모두 실패하였으니 그 무기는 가련하고 그 장교는 무경험하였다. 제1전에 ○군은 ○군의 대장까지 합하여 600여 군병을 살육하고 200여 명을 포로하였다.’


동아일보 1920년 9월 20일자 1면에 실린 칼럼의 첫 부분입니다. ○으로 표시된 자리에는 차례대로 ‘서장’ ‘영’ ‘영’ ‘서’가 들어갑니다. 서장(西藏)은 티베트를 말하죠. 칼럼은 1903년 기관총으로 무장한 영국 원정대가 괭이 칼 화승총을 들고 저항하는 티베트인들을 무차별 학살한 모습을 전합니다.


그런데 ○ 자리에 ‘조선’ ‘일’ ‘일’ ‘조’라고 넣어도 뜻은 그대로 통합니다. 무라타 연발총을 앞세운 일제가 죽창과 화승총으로 맞서는 동학농민군을 살육하던 상황과 같기 때문이죠. 이 해 8월 30일자부터 시작해 14회로 일단락된 ‘대영과 인도’ 익명 칼럼은 영국이 인도라는 곡식창고를 잃지 않으려고 주변 약소국까지 멋대로 침략하는 만행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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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 차인 위 칼럼은 ‘사실상 이는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었다 할 수 있으니 영인의 전사자는 단지 37명이고 서장인의 전사자는 모두 1500여 명에 이르렀다.…영국은 무슨 정당한 이유로 서장인의 귀중한 1500의 생령을 도륙하였는가? 자기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이유로!’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에는 영국군 사망자가 5명, 티베트인 희생자는 5000여 명이라는 추산치도 보입니다.

이렇게 해외 동향을 다뤘지만 동병상련으로 읽으면 일제에 가혹하게 당하는 조선의 현실이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은 인도를 독차지하기 위해 바닷길부터 차단했습니다. 그 통로인 수에즈 운하를 장악하기 위해 이집트를 점령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와 충돌하자 영국은 이집트를, 프랑스는 모로코를 차지하는 것으로 타협하죠. 2회 차는 ‘한 나라의 고유한 토지를 그 나라 인민의 동의를 얻지 않고 제3자가 자유로 처분할 권리가 어디에 있나’라고 분개합니다.

영국은 이제 인도로 가는 육로도 확보하려고 합니다. 인도라는 창고에서 좁쌀 한 알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악착같은 행태였죠. 자연히 인도의 양 날개인 아프가니스탄과 티베트가 바람 앞에 등불 신세가 됩니다. 3회 차는 ‘영국은 자유정치의 요람이라고 하지만 또 그 손에 죄악의 붉은 피가 가장 많이 묻었다. 가면을 벗겨라. 신사국의 뒷면을 보라’고 촉구합니다.

영국은 1880년까지 이미 4차례나 아프간을 침공했습니다. 러시아까지 기웃거리자 아프간 일각에서 차라리 영국과 합치자는 말이 나왔죠. 하지만 ‘영국에 합하면 우리 지방의 주인은 누가 되느냐 종은 누가 되느냐…우리가 종이 되고 우리가 모두 죽고 우리 지방이 일등국의 일부분이 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우리는 닭의 머리가 될지언정 소꼬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라는 독립 의지가 더 강했습니다. 역시 아프간을 빗대 조선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한 겁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해 아시아에서 서양인 배척 분위기가 커지자 영국은 손안에 넣었던 티베트를 중국에 양보하죠. 군침을 흘리던 러시아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중국은 티베트를 자기 군현으로 삼아버립니다. 주권을 되찾으려 일어선 티베트인들에게 총질까지 하죠. 11회 차는 ‘중국이 스스로 다른 나라의 모멸을 받으면서 어떻게 그 쓰라린 가슴으로 감히 다른 약자를 모멸하는가’라고 아시아인의 신의를 팽개친 중국도 비판합니다.

이밖에 1920년 4월에 13회 연재했던 ‘애란(아일랜드) 문제의 유래’를 비롯해 애급(이집트)의 독립, 비율빈(필리핀)의 독립 요구 등도 단순히 외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독립의지를 높이기 위한 맥락의 기사였습니다.

한편 ‘대영과 인도’ 칼럼은 13회 차부터 인도의 현실을 조명하기 시작했지만 14회 차에 [완] 표시가 없이 중단됩니다. 마무리를 짓지 못한 것은 14회 차가 실린 9월 25일에 1차 무기정간을 당한 영향으로 보입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원문
大英(대영)과 印度(인도) (十(10))
一記者(일기자)

印度(인도)의 兩翼(양익) (續(속))
西藏(서장)(티벳트)

西藏人(서장인)은 十日間(10일간)에 三次(3차) 英軍(영군)과 交戰(교전)하야 모다 失敗(실패)하얏스니 그 武器(무기)는 可憐(가련)하고 그 將校(장교)는 無經驗(무경험)하얏다. 第一戰(제일전)에 英軍(영군)은 西軍(서군)의 大將(대장)까지 合(합)하야 六百餘軍兵(6백여군병)을 殺戮(살륙)하고 二百餘名(2백여명)을 捕虜(포로)하얏다. 그러나 英軍(영군)이 『걍쩨』에 達(달)한 後(후)에도 西藏人(서장인)은 依然(의연)히 無雙(무쌍)한 犧牲(희생)을 무릅스고 頑强(완강)히 抵抗(저항)하얏다. 『영허스밴드』는 『다라이、라마』의게 最後通牒(최후통첩)을 發(발)하야 回答(회답)의 期限(기한)을 六月(6월) 卄五日(입오일)로 定(정)하고 그안에 何等(하등) 回答(회답)이 無(무)하면 直(직)히 進軍(진군)하야 『라사』들 占領(점령)하리라 하얏스나 그 通牒(통첩)은 開封(개봉)도 되지 못하고 그대로 도라왓다.

西藏人(서장인)의 意氣(의기)는 이와 갓하얏섯다. 우리가 비록 武力(무력)으로써 敵(적)의게 殺戮(살륙)을 當(당)할지언뎡 엇지 그 無道(무도)한 暴徒(폭도)와 正式交涉(정식교섭)을 開(개)하야 그 無理(무리)한 暴行(폭행)을 承認(승인)하리오 死(사)로써 無道(무도)에 抵抗(저항)함이 오히려 사람된 者(자)의 快(쾌)한 바라 하얏다. 『영허스밴드』는 後援(후원)을 得(득)하야 八月(8월) 三日(3일)에 『라사』를 占領(점령)하얏다. 事實上(사실상) 이는 戰爭(전쟁)이 아니라 虐殺(학살)이엿다 할 수 잇스니 英人(영인)의 死(사)한 者(자) 오즉 三十七人(37인)이오 西藏人(서장인)의 死(사)한 者(자) 都合(도합) 一千五百餘名(1천5백여명)에 達(달)하얏더라.

『다라이、라마』는 蒙古(몽고)로 避身(피신)하얏스나 西藏人(서장인)은 맛침내 同年 九月(9월) 七日(7일)에 英國(영국)과 條約(조약)을 締結(체결)하는 不得己(부득이)함에 至(지)하얏다. 그 條約(조약)의 大略(대략)을 擧(거)하건대

西藏(서장)은 開國(개국)하야 外部世界(외부세계)와 貿易(무역)을 行(행)할지며

萬若(만약) 西藏(서장)이 外國(외국)의게 對(대)하야 그 領土(영토)를 割讓(할양)할 時(시)에는 爲先(위선) 英國(영국)의 同意(동의)를 得(득)함이 必要(필요)하며

何如(하여) 한 나라이든지 英國(영국) 外(외)의 國家(국가)가 西藏(서장)에 對(대)하야 干涉(간섭)하거나 代表(대표)를 派送(파송)치 못할지며

外國(외국)에 對(대)하야 西藏(서장)이 通商上(통상상) 便利(편리)를 賦與(부여)하는 境遇(경우)에는 英國(영국)도 반다시 이에 均霑(균점)할지며

西藏(서장)은 英國(영국)에 對(대)하야 五十萬(50만)『파운드』의 賠償金(배상금)을 支拂(지불)함이 可(가)하다 하얏더라.

英國(영국)은 이 賠償金(배상금)의 支拂(지불)을 受(수)하고 貿易市場(무역시장)이 三年間(3년간) 開放(개방)될 때까지 擔保(담보)로 『컴비―』谿谷(계곡)을 占領(점령)하게 되얏다.

春秋(춘추)에 義戰(의전)이 無(무)하다 하나 世上(세상)에 엇지 이와 갓치 明白(명백)한 無道(무도)의 싸홈과 無理(무리)한 條約(조약)의 强制(강제)가 잇스리오. 英國(영국)은 무슨 正當(정당)한 理由(이유)로 西藏人(서장인)의 貴重(귀중)한 一千五百(1천5백)의 生靈(생령)을 屠戮(도륙)하얏는가. 自己(자기)의 말을 듯지아니하는 理由(이유)로! 吾人(오인)은 實(실)노 論(논)하야 此(차)에 止(지)하매 啞然(아연)히 言(언)할 바를 不知(부지)하겟노라. 禽獸相殺(금수상살)함은 그 비록 哀憐(애연)하나 理性(이성)의 判斷(판단)이 無(무)한 本能(본능)의 動物(동물)이라 論(논)할 必要(필요)가 無(무)하거니와 靈性(영성)을 具備(구비)하야 情(정)이 有(유)하고 또 理(이)를 覺(각)하는 者(자) 何等(하등)의 理由(이유)가 無(무)히 自己(자기)의 欲心(욕심)을 充足(충족)하기 爲(위)하야 屠戮(도륙)을 行(행)하니 이를 禽獸(금수)라 하면 禽獸(금수)가 오히려 怒(노)하리로다.

그러고 그 無理(무리)한 强制(강제)로 한 條約(조약)이 有効(유효)하야 英國(영국)은 堂々(당당)한 權利(권리)를 西藏(서장)에 對(대)하야 主張(주장)하는가? 强盜(강도)가 强奪(강탈)한 財産(재산)에 對(대)하야 被奪者(피탈자)의게 權利(권리)를 有(유)함이 當然(당연)하다 하면 이 亦(역) 當然(당연)할 것이라. 그러나 그 結果(결과) 道德(도덕)과 正義(정의)의 標準(표준)은 顚倒(전도)되야 하날은 따이 되고 따은 하날이 되고 말 것이다.

아― 世上萬事(세상만사)가 모다 그러하다. 이 例(예)가 엇지 英國(영국)에만 限(한)하리오. 細察(세찰)하면 國際上(국제상) 關係(관계) 特(특)히 東洋關係(동양관계)에 이와갓흔 例(예)가 不遑枚擧(부황매거)이라.


현대문
대영과 인도 (10)
한 기자

인도의 양 날개 (속편) 서장(티베트)

티베트인은 10일간에 걸쳐 3차례 영국군과 교전하여 모두 패배하였으니 그 무기는 가련하고 그 장교는 경험이 없었다. 첫 번째 전투에서 영국군은 티베트군의 대장까지 합하여 600여 명을 살육하고 200여 명을 포로로 잡았다. 그러나 영국군이 ‘갼체(江孜)’를 점령한 뒤에도 티베트인은 의연하게 다시없을 희생을 무릎 쓰고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영국 원정대 프랜시스 영허스번드 대령은 달라이라마에게 최후통첩을 보내 회답기한을 6월 25일로 정하고 그 안에 아무런 회답이 없으면 곧바로 진군하여 수도 ‘라싸’를 점령하겠다고 하였으나 그 통첩은 열리지도 않은 채 그대로 돌아왔다.

티베트인들의 의기는 이와 같았다. 우리가 비록 무력으로써 적에게 살육을 당할지언정 어떻게 그 무도한 폭도와 정식 교섭을 하여 그 무리한 폭행을 승인하겠는가. 죽음으로써 무도에 저항하는 것이 오히려 사람 된 자의 속 시원한 일이다 하였다. 영허스번드는 후방지원을 받아 8월 3일에 ‘라싸’를 점령하였다. 사실상 이는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었다고 할 수 있으니 죽은 영국인은 단지 37명이고 죽은 티베트인은 모두 15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달라이라마는 몽골로 피신하였으나 티베트인은 마침내 같은 해 9월 7일에 어쩔 수 없이 영국과 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그 조약의 대략적인 내용을 들어보면

티베트는 개국하여 외부세계와 무역을 시행하며

만약 티베트가 외국에게 대하여 그 영토를 할양할 때는 우선 영국의 동의를 얻는 일이 필요하며

어느 한 나라든지 영국 이외의 국가가 티베트에 대하여 간섭하거나 대표를 파견하지 못하며

외국에 대하여 티베트가 통상의 편리를 부여하는 경우에는 영국도 반드시 똑같이 혜택을 받으며

티베트는 영국에 대하여 50만 파운드의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고 한다.

영국은 이 배상금을 지불받고 무역시장이 3년 간 개방될 때까지 담보로 컴비 계곡을 점령하게 되었다.

중국 사서인 춘추에 의로운 전쟁은 없다고 하지만 세상에 어떻게 이와 같이 명백한 무도의 싸움과 무리한 조약의 강제가 있을까. 영국은 무슨 정당한 이유로 티베트인의 귀중한 1500명의 생령을 도륙하였는가.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실로 논술하여 여기에 이르니 놀라서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 짐승이 서로 죽이는 것은 비록 가엾지만 이성의 판단이 없는 본능뿐인 동물이라 따질 필요가 없지만 영성을 갖추어 정이 있고 이치를 깨닫는 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자기의 욕심을 충족하기 위하여 도륙을 감행하니 이를 짐승이라고 하면 짐승이 오히려 화를 낼 것이다.

그리고 그 무리한 강제 조약이 유효하여 영국은 당당한 권리를 티베트에 대하여 주장하는가? 강도가 강탈한 재산을 두고 빼앗긴 자를 향해 나에게 권리가 있음이 당연하다고 하면 이 역시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도덕과 정의의 표준이 뒤집혀 하늘은 땅이 되고 땅은 하늘이 되고 말 것이다.

아! 세상만사가 모두 그러하다. 이 사례가 어찌 영국에만 한정되겠는가. 자세히 살피면 국제관계 특히 동양관계에 이와 같은 사례가 일일이 셀 겨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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