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요양병원의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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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13명 숨졌다더니 98명 사망… 검사-격리 못해 피해 커

미국과 유럽의 요양병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새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보스턴글로브 등은 기저 질환이 많은 고령 환자가 좁은 공간에 몰려 있는 데다 일반 병원에 비해 열악한 인력 및 시설, 사회적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건물 구조 등이 ‘코로나19 확산의 완벽한 인큐베이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AP통신은 705개 병상을 보유한 미국 뉴욕 맨해튼 북부의 이저벨라 노인요양병원에서 1일 기준 98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시 당국 통계의 사망자는 13명에 불과하지만 1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나왔음이 뒤늦게 알려졌다고 전했다. 사망자 46명은 확진 판정을 받았고, 52명은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된다. 입원자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추가 감염자 및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병원 측은 아직 정확한 사망자 급증 이유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병원 대변인은 “뉴욕의 다른 요양원들처럼 우리 역시 입소자 및 직원들의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신속하게 검사할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다”고만 밝혔다. 인력 부족 등으로 제때 검사를 시행하지 못했고 감염자를 신속하게 격리하지도 못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보스턴글로브는 요양병원 근로자의 상당수가 저임금에 다른 직업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이들이 요양병원 출근을 거부하는 일이 잦았고 진단검사 기구 및 보호 장비 부족까지 겹쳐 비극을 키웠다고 덧붙였다.

뉴욕주 보건부는 이날 “주 전체 노인 요양시설 239곳에서 코로나19 발병 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이 중 6개 시설에선 코로나19 사망자가 40명 이상 보고됐다. 이저벨라 요양원처럼 실제 사망자 수가 축소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일 플로리다주는 “주 전체 사망자 1364명 중 400명 이상이 요양병원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매사추세츠주의 한 요양병원에서도 69명이 코로나19로 숨졌다. 3월 서부 워싱턴주 시애틀 라이프케어센터 요양병원에서 최소 16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유럽의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달 23일 스페인 방송 RTVE는 정부 비밀보고서를 입수해 “스페인 전체 사망자의 3분의 2가 요양병원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벨기에 정부도 요양원 사망자 중 95%를 코로나19 의심 환자로 분류했다. 맷 행콕 영국 보건장관은 지난달 22일 의회에 “영국 사망자의 20%가 요양원에서 나왔을 수 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영국 의료전문가들은 “이 수치가 실제로는 40%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스 클루게 세계보건기구(WHO) 유럽 담당국장은 지난달 23일 “유럽 사망자 절반이 장기요양시설에서 나왔다.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이라며 “각국 정부가 장기요양시설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요양원 직원들에게도 충분한 의료 장비를 제공해야 하고 입소자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등을 교육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겠다며 가족, 친지 등의 요양시설 방문을 금지하면 입소자들에게 정신적으로 더 큰 부담을 안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코로나19#뉴욕#요양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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