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허용오차와의 싸움’이 인류의 역사다

김기윤 기자 입력 2020-05-02 03:00수정 2020-05-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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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자들/사이먼 윈체스터 지음·공경희 옮김/480쪽·2만2000원·북라이프
최초의 우주망원경인 허블 우주망원경. 당초 1983년 발사를 목표로 제작했지만 계측 도구에서 3cm의 오류가 발생해 1990년에 발사됐다. 북라이프 제공
1986년 1월 28일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대를 떠난 지 73초 만에 폭발했다. 가스가 새지 않도록 밀봉하는 고무패킹 오링(O-ring)의 탄성을 정밀하게 예측하지 못한 탓이었다. “추운 날씨에 오링이 제구실을 할 수 없어 발사를 연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이를 ‘수용 가능한 위험’으로 봤고, 승무원 7명은 목숨을 잃었다. 당시 발사에 참여했던 한 기술자는 “사고 이후 30년 동안 자책했다”고 고백했다.

산업혁명 후 인류의 역사는 정밀성을 정복하는 과정이었다. 숱한 실수와 오류를 반복하면서도 인류는 점점 더 정교한 시공간을 소유했다. 이는 허용오차 0.0001초, 0.0001mm까지 갈망했던 완벽주의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옥스퍼드사전을 편찬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역저 ‘교수와 광인’을 쓴 저자가 현대 과학기술의 정밀한 토대를 만든 이들을 조명했다. 책은 제목을 ‘정밀성의 역사’로 바꿔 달아도 될 만큼 정밀성이 진화해온 여정에 집중한다.


정밀성을 “역사적 필요에 의해 의도적으로 발생된 개념”으로 규정한 저자는 근대 이후에야 복제 가능한 형태로 인류가 정밀성을 구현했다고 본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약 200년간 증기기관, 엔진, 시계부터 오늘날의 반도체, 스마트폰, 우주과학기술을 이끈 공로자들을 발굴해냈다. 발명품 이야기와 역사적 사건들 이야기는 저자의 꼼꼼한 옛 문헌 취재가 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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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는 맨체스터 출신의 조지프 휘트워스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당시 그가 출품한 기계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훗날 ‘표준 정밀성’의 토대를 마련했다. 표준화한 나사를 비롯해 ‘완전한 평평함’과 직선을 측량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든 것. 이전까지 임의로 고른 10분의 1인치 너트와 볼트가 완벽하게 맞물릴 확률은 극히 낮았지만 그는 “모든 나사를 표준화하자”는 아이디어를 실현해냈다.

대다수를 위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헨리 포드 역시 완벽주의자다. 포드의 초기 자동차 모델은 기술자들이 공장 바닥에 널린 모든 부품을 직접 손질하고 조여서 엉거주춤하게 탄생했다. 하지만 ‘모델T’ 개발 이후 부품을 더 이상 다듬지 않아도 됐다. 정확한 규격의 허용오차에 맞춘 부품들은 더 이상 손질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제작 속도와 작업량은 혁신적으로 치솟았다. 포드의 방식은 모든 공장에 풍요로움을 가져다줬다.

저자가 정밀성을 절대선(善)으로만 묘사하는 건 아니다. 정확한 작업을 해내는 기계는 숙련공의 자리를 대체해 영국에서 러다이트 운동(기계 파괴 운동)이 발생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후 일본을 찾은 저자는 “인류는 매끈하게 마감된 경계선에만 감탄하고 집착하지만 자연의 질서 역시 중시해야 한다”며 “정밀하지 않은 자연 앞에서는 모든 것이 비틀대고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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