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서 심정지 환자 구조하던 소방 헬기 추락…구조 요청한 부부 사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일 21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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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낮 12시7분쯤 경남 지리산 천왕봉 정상 인근에서 심정지 등산객 구조를 위해 출동한 경남소방본부 헬기 1대가 추락한 모습.(경남도소방본부 제공)2020.5.1./뉴스1 © News1
1일 낮 12시7분쯤 경남 지리산 천왕봉 정상 인근에서 심정지 등산객 구조를 위해 출동한 경남소방본부 헬기 1대가 추락한 모습.(경남도소방본부 제공)2020.5.1./뉴스1 © News1
심정지 환자 구조 요청을 받고 지리산으로 출동했던 소방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구조를 요청한 60대 환자 부부가 숨졌다. 구조 요청을 받고 출동했던 기장과 부기장, 정비사, 구조요원, 구급대원 등 헬기 탑승자 5명은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소방청과 경남소방본부에 따르면 1일 낮 12시 6분경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지리산에서 경남소방본부 소속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지점은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해발 1915m)에서 400m 가량 떨어진 곳이다.

합천의 경남소방항공대에 있던 사고 헬기는 이날 오전 11시 18분경 “천왕봉 아래애에 심정지 환자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약 10분 뒤 이륙했다. 11시 50분경 천왕봉에서 법계사 방향으로 약 400m 떨어진 사고 현장에 도착한 헬기는 지상 15m 상공에서 정지 비행으로 낮게 날면서 심정지 환자 조모 씨(65)를 끌어올리기 위해 들것이 달린 호이스트(권양기) 줄을 내렸다. 천왕봉 주변엔 헬기가 착륙할 만한 장소가 없었다.

헬기에서 권양기 보다 먼저 내겨간 구급대원이 조 씨를 들것에 묶자 권양기 줄은 헬기 본체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권양기가 본체에 이르기 전에 헬기가 중심을 잃기 시작하다가 바위가 있는 지대로 불시착했다. 소방당국은 권양기 줄이 근처의 다른 물체에 걸리면서 헬기가 균형을 잃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지리산에는 초속 7m 안팎의 남동풍이 불었다.

조 씨를 헬기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균형을 잃고 헬기가 떨어지는 사고가 난 뒤 조 씨는 오후 12시 48분에 현장 도착한 중앙119구조본부 헬기에 실려 진주 경상대원병원으로 이송됐으나 1시간 뒤 숨졌다. 남편이 권양기로 올라가는 장면을 지켜보던 부인 권모 씨(61)는 떨어지는 사고 헬기 주 날개에 부딪혔다. 권 씨는 출동한 대구시소방본부 헬기로 같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사고 현장 근처에 있던 등산객 권모 씨(45·여)는 하산한 뒤 헬기 추락 과정에서 허리에 부상을 입었다고 산악구급대에 신고해 진주제일병원으로 이송됐다.

사고 헬기는 동체 일부만 파손됐고 폭발이나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고 현장을 촬영 영상을 보면 헬기가 바위 지대로 추락할 때 충돌음과 함께 흙먼지가 크게 일었다. 구조 과정을 지켜보던 등산객 20여 명은 헬기 추락 과정에서 파편이 튀자 급히 대피했다.

사고 헬기는 미국 항공기 제작사 시코르스키가 1992년 제작한 S-76B 기종이다. 경남도소방본부는 지난해 9월 세진항공으로부터 이 헬기를 임차해 인명구조, 산불진화 등에 투입해왔다. 탑승 정원은 14명이며, 환자 이송에 필요한 응급의료 시스템과 인명 구조를 위한 권양기 등이 장착돼있다. S-76B는 올 1월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가 탑승했다가 추락해 숨진 헬기와 같은 기종이다.

소방당국과 경찰은 탑승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도 사고 원인 조사를 위해 현지에 조사관 4명을 급파했다.

산청=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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