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수업 혼란 딛고 안정 찾아… 국가차원 ‘원 플랫폼’ 구축 필요[인사이드&인사이트]

박재명 정책사회부 기자 입력 2020-05-01 03:00수정 2020-05-01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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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속 초중고 온라인개학 3주
박재명 정책사회부 기자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한국 교육이 오늘부터 갈 것입니다.”

온라인 개학 첫날인 4월 9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렇게 선언했다. 당시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3월 2일 이후 세 차례나 개학을 연기한 시점이었다. 수업일수 결손이 불가피한 상황까지 몰리자 고3과 중3을 시작으로 3차에 걸쳐 학생 534만 명의 전체 온라인 개학을 선택했다.

모든 학생이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로 교사를 만나는 초유의 실험이 진행된 지 3주. 앞으로도 길게는 한 달 가까이 지속될 수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본 이들의 ‘중간 평가’와 함께 향후 과제를 짚어 봤다.


○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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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개학 준비 기간은 길지 않았다. 처음 방침을 발표한 3월 31일 이후 실제 온라인 개학을 처음 시작한 4월 9일까지 열흘이 채 안 됐다. 원격수업용 공공학습 플랫폼인 ‘e학습터’를 운영하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김진숙 교육서비스본부장은 “처음부터 학생들의 수업 결손을 막기 위해 ‘가능하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는 각오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접속 오류는 온라인 개학 첫날부터 말썽이었다. 정부가 관리하는 플랫폼인 e학습터와 ‘EBS 온라인클래스’는 계속 접속 오류 메시지를 냈다. 4, 5시간씩 접속이 안 돼 수업을 못 들었다는 학생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교사가 플랫폼에 접속하지 못해 부랴부랴 학급 ‘단톡방’을 만들어 수업하는 학급도 속출했다.

2차 온라인 개학이 이뤄진 4월 16일 이후로는 플랫폼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장의 접속 분산, 플랫폼 운영사의 로그인 방식 변경 등이 효과를 봤다. 27일 기준으로 e학습터 로그인 이용자 수는 185만 명, EBS 온라인클래스 이용자는 218만 명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비록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길이 없는 산에 새로운 등산로를 개척한 격”이라며 “하드웨어 측면에선 앞으로 시행착오를 줄이게 됐다”고 평가했다.

○ 교사와 학생의 적응은 빨랐다

원격수업 3주를 지나면서 교육 현장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지표가 교사들이 원격수업 플랫폼에 올리는 콘텐츠의 양(量)이다. 온라인 개학 초기인 4월 10일 e학습터에는 15만2000여 건의 학습 콘텐츠만 있었다. 하지만 21일에는 전체 콘텐츠가 175만8000여 건으로 열흘 사이에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KERIS 측은 “예상을 뛰어넘는 증가 속도”라고 전했다.

경기 용인시 구갈초 6학년 담임인 김연경 교사는 원격교육에 대해 “제법 자리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김 교사는 “일부 학생이 발표하는 대면수업과 달리 원격수업은 모든 학생이 저마다 의견을 낼 수 있다”며 “협업, 발표 등의 측면에서는 교육적 효과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익명 형태로라도 학생들의 수업 참여와 발표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김 교사는 앞으로 폴란드의 한국어 대학교수,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 등을 원격으로 초대해 학생들의 직업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그는 기자에게도 “직업 문답에 원격으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터넷의 장점을 교육에 그대로 접목하는 것이다. 위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100% 원격수업’이지만 우리 교사와 학생의 적응은 모두의 생각보다 빨랐다.

○ 평등하지는 않았다

인터넷 공간은 개방되어 있지만 평등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원격수업도 3주 시행 결과 지역, 학교, 교사에 따른 교육 불평등이 발생했다.

A 교사는 농촌 군 단위 학교에서 초등학교 고학년 6명을 지도한다. 그는 등교 개학만 기다리고 있다. 집에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학생 2명은 학교에 와서 컴퓨터를 켠다. A 교사는 “인터넷과 컴퓨터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학생도 있지만 우리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원격수업은 ‘평균’을 지향한다. 평균 진도를 나가고, 평균 수준의 문제를 함께 푼다. 너무 잘하거나 뒤떨어지는 학생은 배제된다. 온라인만으로는 개인별로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진도를 제대로 따라가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A 교사는 “시골에서는 학교가 학원, 과외방, 놀이방을 겸한다”며 “원격수업만 실시한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서 모든 것을 뺏어간 것”이라고 했다.

유네스코는 4월 28일 전 세계에서 휴교로 학업 차질을 겪는 학생이 유치원부터 초중고교 및 대학생까지 12억9000만 명(전체의 73.9%)에 이른다고 밝혔다. 여기에 초등학교 저학년은 학력 저하, 인성교육 등의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원격수업을 해도 학력 저하 문제는 앞으로 몇 년 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원격수업이 등교수업만큼의 ‘보편적 교육’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이론의 여지가 많다. 교육 당국은 이번에 전체 학생의 5.3%인 28만2982명에게 스마트기기를 대여했지만 ‘빈틈’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조손가정, 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정에선 기기가 있어도 다루기 쉽지 않다. 아직은 동네마다 있는 학교에 등교해 수업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교육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대면수업 ‘보완책’으로 자리잡아

원격교육을 대면수업의 ‘보완책’으로 병행하자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코로나19는 물론이고 또 다른 감염병이 언제 창궐할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감염병이 아니더라도 시공간을 뛰어넘고, 참여가 자유로운 원격교육의 장점을 공교육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요구가 ‘원 플랫폼’ 구축이다. 유리 파편처럼 흩어진 국내 원격교육 도구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하자는 것이다.

실제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만 중 하나가 “수업에 쓰는 프로그램이 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교육부가 현장에 내려보낸 가이드라인에선 활용 프로그램이 e학습터, 위두랑, EBS 온라인클래스, 줌, 구루미, 구글 행아웃, MS팀스 등 10개가 넘었다. 여기에 학교마다 사설 애플리케이션(앱)까지 추가하면서 혼란은 더욱 커졌다.

이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원격교육용 단일 플랫폼을 만들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쌍방향 대면수업, 동영상 시청, 과제 제출을 한곳에서 할 수 있어야 원격교육을 지속 가능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 신현욱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정책본부장은 “학생들의 학습효과를 높이는 차원에서도 중구난방인 교육 플랫폼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 지식수업은 원격으로 대체하자

등교 개학이 시작되면 한 달 넘게 쌓인 온라인 개학의 ‘노하우’는 바로 사장될까. 최근 교육계의 궁금증 중 하나다. 교육 당국은 “원격교육 노하우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성근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은 “교사 대상 설문을 진행하고 있는데 교사들 가운데서도 원격수업을 등교 개학 이후에도 활용하자는 주장이 많다”며 “등교가 시작되더라도 원격수업은 어떤 형태로든 발전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나 고전적인 지식 축적용 수업을 원격수업으로 대체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전국 교사들이 다양한 교과서 수업 내용을 단일 플랫폼에 올리고, 학생들은 그중에서 뛰어난 수업을 듣고 수업 시수를 채우는 것이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는 “지식을 배우는 수업을 온라인에 맡긴다면 교사들은 학생 개개인에게 맞추는 맞춤형 수업, 정서 교육에 힘쓸 수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훌륭한 원격수업을 공모해 모두가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학교 간 공동 과정을 만들어 원격수업을 공유한다면 2025년에 전면 도입할 예정인 고교학점제 안착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 ‘K에듀’도 전파하자

우리가 시도한 3주간의 온라인 개학 실험 결과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교육부와 KERIS에 따르면 개별 국가로는 아랍에미리트 아르헨티나 칠레, 국제기구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네스코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이 최근 우리의 원격교육 경험을 공유해 달라고 요청했다. KERIS 관계자는 “많은 국가들이 온라인 개학에 나섰지만 전 학년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100% 개학한 경우는 드물다”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를 묻는 국가나 기관이 많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5월 중 원격수업의 성과를 분석한 뒤 개별 기업의 교육 수출도 지원할 방침이다.

여기엔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가 다른 국가보다 앞서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외에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각 학교로 이어지는 긴밀한 교육 체계도 영향을 줬다. 평소에는 이런 체계가 교육정책을 ‘톱다운’ 방식으로 만든다는 비판도 많지만 이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국가 단위의 빠른 대처를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온라인 개학 이후 평가를 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꼽힌다. 교육 기업인 스마트테스트 이향룡 대표는 “원격교육의 핵심은 평가인데 이번엔 그런 시도가 없었다”고 말했다.
 
박재명 정책사회부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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