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안보이완을 경계한다[국방 이야기/윤상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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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하는 가운데 박격포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군이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하는 가운데 박격포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의 기습 공격으로 촉발된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은 이스라엘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유대 명절인 ‘욤키푸르(속죄의 날)’를 기해 이집트와 시리아 연합군은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에 총공세를 펼쳤다. 군 장병을 비롯해 대부분의 국민이 명절 분위기를 만끽하느라 대비태세가 느슨해진 틈을 노린 일격에 이스라엘군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미국의 군사 원조와 휴전 중재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지만 이스라엘은 톡톡히 대가를 치렀다. 상당한 영토를 양보하는 한편으로 1∼3차 중동전쟁의 ‘무패신화’에도 금이 갔다. 이후 이스라엘 국방부는 10명 중 9명이 동의해도 1명은 반드시 반대해야 하는 ‘10번째 남자’ 제도를 도입했다. 욤키푸르 전쟁을 안보 이완의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차후 대비에 한 치의 방심이 없도록 한 것이다.

한국과 안보 상황이 유사한 이스라엘의 교훈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 정부와 군도 무뎌진 대비태세를 방치했다가 북한에 허를 찔린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2년 6월 29일에 터진 제2연평해전이 대표적 사례다. 교전 발생 보름 전부터 북한 경비정들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다가 우리 고속정의 경고를 받고 퇴각하는 일이 반복됐지만 군은 예사로 넘겼다. 언론의 우려에도 군은 북한 어선의 꽃게잡이 조업 단속 과정에서 단순 월선한 것이라는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평화 무드에 취한 데다 세계 이목이 쏠린 한일 월드컵 기간에 도발을 할 리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 후과(後果)는 북한 경비정의 기습 포격으로 6명의 장병이 희생되고 국방부 장관 등 군 수뇌부가 줄줄이 경질되는 비극으로 귀결됐다.

10년 전 발생한 천안함 피격 사건도 다를 게 없다. 당시 군은 서해의 얕은 수심에서는 북한의 잠수함 운용이 불가능하다고 예단하면서 수상함 대결에선 우리가 압도적 우위라는 자만심에 취해 있었다. 북한은 이를 정확히 간파해 소형 잠수정에서 어뢰를 쏴 천안함을 피격해 우리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이듬해 발간한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에서 정부는 사건 당일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과 예비모선들이 기지 출항 후 사라진 사실을 알고도 경계태세를 강화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천안함 피격의 주원인이 대북 안보 이완임을 자인하는 취지로 평가됐다.

최근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 대한 정부와 군의 태도에서 대북 안보이완의 ‘데자뷔(기시감)’가 느껴지는 건 필자뿐일까. 북한이 핵을 탑재할 수 있는 대남 타격 신종 무기와 순항미사일 등을 연신 쏴 올려도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지 않은 채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 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군도 의례적인 유감 표명만 하고 넘어가는 게 일상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 대비태세가 눈에 띄게 무뎌지는 징후도 감지된다. 제주해군기지를 비롯한 군부대 곳곳이 민간인에게 뚫리는가 하면 비상대기 중이던 공군 조종사들이 음주를 하다 적발되는 등 기강 해이가 도를 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해군기지에선 새로 교체한 경계용 폐쇄회로(CC)TV의 오작동 상태를 알고도 수개월간 방치했고 술판을 벌인 조종사들은 지난해 한 차례도 비상출격을 하지 않았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설마 적이 도발해 올까’ 하는 방심과 태만이 일선 부대까지 스멀스멀 스며든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법하다.

9·19 남북 군사합의 이후 축소 진행됐던 한미 연합훈련 등 주요 훈련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 취소되면서 군내 긴장도가 확연히 떨어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최근 상관에 대한 강제 추행·폭행 사건이 잇따르는 게 그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안보의 가장 큰 독(毒)은 위기에 둔감해지는 것이다. 군은 어정쩡한 평화에 도취되기보다는 현실을 냉철히 진단하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김정은이 연초에 경고한 ‘충격적 실제행동’이 언제든 현실화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대북 안보이완의 후과를 반복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악순환이 또다시 재연되지 않길 바란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sh1005@donga.com
#대북 안보#제2연평해전#천안함 피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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