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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현대화 작업 거친 ‘3·1운동 100년史’… 더 읽기 쉽고 풍성해졌다

입력 2020-04-01 03:00업데이트 2020-04-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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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0주년]
본보 창간 100주년 기념 ‘3·1운동 기념논집’ 재출간
1919년 3·1운동 당시 시위대가 서울 중구 정동에 있던 미국 영사관(덕수궁 선원전 터)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는 모습. ‘3·1운동 100주년 기념논집’ 발간에는 3·1운동이 단순히 과거에 속한 것이 아닌 현재,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밝혀줄 지표라는 의미가 담겼다. 작은 사진은 왼쪽부터 3·1운동 50주년과 70주년,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각각 발행됐던 기념논집들. 독립기념관 제공·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이 논집의 간행은 21세기의 독자들도 3·1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재조명하며, 그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에 공감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3·1운동 100주년 기념논집’이 출간됐다. 3·1운동 100주년(2019년)과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2020년)을 기념해 선보이는 것이다. 100년 전 3·1운동은 전국 곳곳에서 울려 퍼진 만세의 함성을 통해 한민족의 독립 열망을 확신시켰으며, 민족의 표현기관을 자임한 동아일보의 창간은 3·1운동이 가져온 결과물이었다.

논집에 담긴 시간은 깊다. 3·1운동 50주년을 맞은 1969년 처음으로 선보였던 논문들이다. “이 논집이 3·1운동의 꺼질 수 없는 횃불의 광도(光度·빛의 세기)와 지속도(持續度·유지하는 힘)를 측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는 것이 첫 간행 당시 편집위원회의 발간 의도였다. 이 논집은 학계와 전문가들의 요청에 따라 3·1운동 70주년이었던 1989년에도 한 차례 발행됐으며, 새로운 독서 세대와도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는 공감대에 따라 다시 한 번 나오게 됐다.

○ 새로운 세기에도 이어지는 논집의 생명력

논집에는 ‘3·1운동에 이르는 민족독립의 원류’부터 ‘20세기 초 일본 세력 팽창의 재평가’에 이르는 내용까지 담겨 3·1운동에 대한 다각적인 논점을 제공하는 석학들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필진에는 당시 역사학뿐 아니라 정치학과 경제학, 법학, 국문학 등 다양한 전공의 최고 학자들이 망라됐다. 한우근 전 서울대 명예교수(1915∼1999), 백철 전 중앙대 한국학연구소장(1908∼1985), 신석호 전 학술원 종신회원(1904∼1981) 등 국내 학자들과 새뮤얼 H 모펫 전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교수(1916∼2015) 등 해외 석학들이 대거 참여했다. 조광 위원장은 “워낙 쟁쟁한 국내외 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이 논집에 필자로 끼지 못한 사람은 지성인으로 대접받지 못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국어학자 이희승(1896∼1989)은 논집에 실린 글 ‘내가 겪은 3·1운동’에서 3·1운동 첫날의 상황을 상세히 묘사한다. “1919년 3월 1일 하오 1시경, 내가 근무하는 회사 사무실 탁상전화의 벨이 유난히 우렁차게 울렸다. 수화기를 귀에 대자마자 파고다공원에서 독립만세의 함성이 터졌다는 친구의 알림을 받고,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격심한 충격에 못 이겨 모든 일을 집어치우고 탑골공원으로 달려갔다….” 서울거리는 함성의 격랑으로 뒤덮였고 육조 앞 넓은 거리(지금의 세종대로)에는 콩나물시루처럼 인파가 빽빽이 차 있었으며 시위대의 맹렬한 기세에 일본 관헌들이 멍청하니 수수방관하고 있었다고 이희승은 회고한다.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를 도와 3·1운동을 사전 준비했던 이병헌(1897∼1976)도 3월 1일 태화관 독립선언식 현장에서 목격한 사실들을 기념논집에 담았다. 그에 따르면 1일 정오부터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 별 6호실로 회합했고, 손병희 선생은 (달려온) 경찰에게 “우리의 할 일이 있다”고 하면서 한용운 선생에게 식사를 재촉했다. 식사가 끝나고 한용운 선생의 선창으로 일동이 만세를 삼창한 뒤 현관 옆 창고에 대기하던 경찰에게 5인씩 연행되는 장면도 소상히 소개됐다.

○ “3·1운동은 동아일보를 낳았고 동아일보는 3·1운동을 빛냈다”

논집의 영향력은 컸다. 발행 이후 3·1운동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고찰하려는 노력이 관련 학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펼쳐졌다. 또 3·1운동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집에 게재된 논문을 지속적으로 인용해 학술적 가치도 입증받았다. 지난해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백년만의 귀환: 3·1운동 시위의 기록’에서도 이 논집은 ‘3·1운동 연구의 출발이자 획기적 성과’라는 높은 평가와 함께 재조명을 받았다. 이는 논집의 가치가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의미였고, ‘3·1운동 100주년 기념논집’을 재출간하게 된 배경 가운데 하나였다.

이번 ‘3·1운동 100주년 기념논집’은 이전 발행본과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무엇보다 76명의 국내외 학자들의 논문을 싣되 문장과 어휘 등을 다듬는 작업을 거쳤다. 한자로 돼 있는 단어들은 대부분 한글로 바꿨고, 한자가 필요하다면 한자를 병기했다. 인명과 지명도 마찬가지 원칙을 적용했다. 예컨대 ‘일본 해군중장 野村吉三郞’는 ‘일본 해군중장 노무라 기치사부로’로, ‘橫濱 埼玉에서’는 ‘요코하마, 사이타마에서’로 수정했다. 이런 작업에만 5개월이 넘게 걸렸다. 요즘 사용하지 않는 고어투 문구도 모두 교체했다. ‘긍(亘)하여’를 ‘…에 걸쳐’로, ‘감(鑑)하여’를 ‘…에 비추어’로 바꾸는 식이다. 대여섯 줄에 걸쳐 이뤄진 문장은 나누고 줄여 읽기 쉽도록 했다.

현대화 작업을 거쳐 선보이는 이번 논집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반응은 뜨겁다. 신주백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과거 100년을 통해 미래 100년을 보아야 하는 역사적 전환기에 3·1운동의 통합 정신이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집의 간행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준 단국대 명예교수는 “3·1운동과 동아일보의 관계가 아름답다. 3·1운동은 동아일보를 낳았고, 동아일보는 3·1운동을 빛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면서 “동아일보가 발간한 ‘3·1운동 100주년 기념논집’에는 3·1운동의 의의뿐 아니라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통합의 3·1운동 정신이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50주년 기념논집’ 제작에 참여했던 편집위원들은 “앞으로 3·1운동 연구는 지방사적 접근에 비중을 둘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3·1운동을 민중운동으로 파악하려고 할 때 요원의 불길같이 퍼졌던 지방운동의 실태와 배경의 파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본보가 2018년부터 올해 2월까지 3년에 걸쳐 진행한 ‘3·1운동 100년 역사의 현장’은 이 같은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이 작업은 최근 2권의 단행본(‘3·1운동 100년 역사의 현장’)으로 엮여 출간됐다.

김지영 kimjy@donga.com·성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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