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대통령, 마약왕 모친에 ‘존경하는 노부인’ 발언 논란

  • 뉴시스
  • 입력 2020년 3월 31일 11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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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 송환 촉구 탄원서 받고 '인도주의' 내세워 찬성 입장 밝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의 노모와 악수를 하고 ‘존경받는 노부인(respectable old lady)’이라고 지칭해 논란이 일고 있다. 범죄자를 옹호한다는 이유에서다. 신체 접촉을 자제하라는 멕시코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지침 위반이기도 하다.

엘차포(El Chapo·땅딸보)란 별명으로 유명한 구스만은 멕시코 범죄조직인 시날로아 카르텔(카르텔)의 수장이다. 그는 지난해 미국에서 범죄조직 운영, 마약 밀매, 자금 세탁 등 혐의로 보석 없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카르텔 본거지인 시날로아를 비롯한 멕시코 사회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31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2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는 시날로아주를 방문한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구스만의 모친 마리아 콘수엘로 로에라가 타고 있는 차량에 다가가 창문 틈으로 악수를 한 뒤 ‘탄원서를 받았다’고 말하는 모습이 담긴 30초 분량의 동영상이 공개됐다.

92세인 로레아는 앞서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에게 자신이 죽기 전 미국에 가서 아들을 볼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달라는 탄원서를 보낸 바 있다.

이 동영상에는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구스만의 변호사 중 한 명인 호세 루이스 곤살레스 메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담겼다.

그는 “존경하는 노부인(로레아)가 도움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보냈다”면서 “이는 미국 정부, 미국 대사관에 달려있다. 나는 인도적인 이유로 그가 간병인, 요양사, 의사들과 함께 (구스만을 만날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대통령 수행원이 촬영한 이 동영상이 공개되자 멕시코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비판이 쇄도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30일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로레아와 만난 경위를 설명한 뒤 이를 스캔들로 만들려는 정적들을 비난했다. 좌파 성향인 그는 보수주의자 또는 화이트칼라 계층의 부패가 존경 받는 노부인보다 멕시코에 더 큰 위협이라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구스만의 출생지 인근 시날로아 도로 공사 현장을 시찰하던 중 로레아의 요청을 받고 만남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숨길 것이 없다.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로레아에게 지난 20일 받은 탄원서를 공개하겠다고도 약속했다.

멕시코 대통령실이 이날 오후 공개한 로레아의 탄원서에 따르면 로레아는 구스만이 미국으로 불법 인도됐기 때문에 멕시코로 돌아와 복역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스만은 지난 2001년 멕시코 교도소에서 탈옥해 2014년 13년만에 검거됐다. 하지만 1년 만인 2015년 다시 탈옥했고 이후 검거돼 미국으로 인도됐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노령자와 신체접촉을 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을 두고는 “로레아와 악수를 하지 않았다면 무례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나는 로봇이 아니다. 감정이 있다”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멕시코 정부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신체 접촉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태도는 카르텔과 전면적인 대립 보다는 직업 훈련 등을 통해 멕시코 범죄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신의 기조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AP는 분석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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