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사상 첫 ‘무제한 돈풀기’ 카드 꺼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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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간 매주 RP 한도 없이 매입… 은행-증권사에 유동성 공급하기로
금융권, 두산重 1조 긴급대출 추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기업들의 돈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무제한 돈 풀기’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1998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내놓지 않았던 조치로, 발권력을 동원해 금융기관에 한도 없이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뜻이다. 정부와 금융권은 두산중공업에 1조 원 규모의 긴급 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은은 26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한국은행의 공개시장 운영규정과 금융기관대출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4월부터 3개월 동안 매주 1회 한도를 정해 두지 않고 금융기관의 수요에 맞춰 환매조건부채권(RP)을 전부 매입할 계획이다. RP는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후에 다시 사는 조건으로 파는 채권으로, RP를 매입한다는 건 금융기관에 현금을 풀어준다는 얘기다.

더 많은 금융기관이, 더 쉽게 돈을 끌어갈 수 있도록 RP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금융기관과 대상 증권도 대폭 늘렸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시장의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 없이 공급하기로 결정한 조치”라며 “사실상의 양적 완화 조치로 봐도 무방하다”라고 밝혔다.

한은이 전례 없는 ‘한국판 양적 완화’ 카드를 꺼낸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소상공인은 물론이고 중견·대기업들의 돈줄마저 막히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24일 정부는 금융회사들을 동참시켜 채권시장안정펀드(20조 원) 등 100조 원 규모의 ‘민생·금융시장 안정화방안 패키지’를 긴급 가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장의 수요를 감당할 만큼 참여 금융회사들의 자금 여력이 있는지 우려가 제기됐다.


▼ 기업 자금난 심화에 ‘한국판 양적완화’ ▼

한은 ‘무제한 돈풀기’ 카드

그러자 한은이 매주 돈을 풀어 은행과 증권사들이 유동성 걱정 없이 패키지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은이 RP 매입을 통해 은행에 현금을 풀면 해당 은행은 채안펀드에 돈을 부을 수 있고, 펀드는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매입하게 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은이 무제한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면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해주는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단, 일각에서는 입찰금리가 다소 높다는 지적과 기업 자금난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은이 회사채와 CP를 직접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기업에 대한 긴급 수혈도 시작된다. 26일 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27일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대기업 금융지원 방안을 논의한다. 이 자리에서 경영 악화로 재무구조 개선에 나선 두산중공업에 1조 원가량을 대출해주는 안에 대해 논의한다. 정부는 앞서 24일 100조 원 규모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대기업도 지원 대상에 포함시켰다.

대출이 성사되면 두산중공업의 대주주인 ㈜두산은 자사가 보유한 두산중공업 주식과 부동산 등을 이번 대출약정에 대한 담보로 제공할 방침이다.

정부도 이날 추가 자금 지원 대책을 내놨다. 금융회사의 비예금성 외화부채에 부과하는 외환건전성 부담금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면제하기로 했다. 은행의 외화유동성 커버리지 비율(LCR) 하한선을 종전 80%에서 70%로 낮춰 은행이 달러화 등 외화자산의 일부를 기업에 제공할 수 있게 했다.

장윤정 yunjung@donga.com·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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