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은 없고 꼼수만 난무한다[동아 시론/윤종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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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두고 民心 외면하는 정치권… 국민은 반칙과 기득권 끊어내길 원해
‘공정과 세대교체’가 이번 시대정신… 국민 삶 바꾸는 큰 그림 제시해야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총선이 어느새 목전에 다가왔지만 코로나19 위험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후보자의 선거운동이 주춤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권의 ‘그들만의’ 비례 위성정당을 둘러싼 꼴사나운 이전투구는 유권자의 정치와 선거에 대한 불신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일상적인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절대 바뀌지 않는 익숙한 풍경이 있다. 유권자들은 정당과 후보자가 어떻게 다른지, 도대체 누구를 뽑아야 할지 혼란스럽다. 이번에도 정당들은 어김없이 감동할 만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선거 승리에 집착한 정치 구호에 매달려 있다. ‘대통령 탄핵’ ‘조국 수호’ ‘재집권’ 등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진영 논리만 난무하고 우리의 정치와 삶을 바꿀 개혁적 비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복잡하고 어렵게 합의한 ‘준연동형 비례제’를 두고 거대 양당은 의석수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꼼수를 꼼수로 응징’한다는 희한하고 우스운 이유로 국민을 농락하고 있다. 비례대표 의원 공천은 선거가 약 3주 남은 시점에도 마무리되지 않아 유권자의 혼란과 상실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정치권에 바라는 가치와 비전은 너무나도 자명한데 정치권은 21대 국회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애써 무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바라는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우선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취업, 인사, 입시, 부동산 등에서 기득권 세력의 ‘반칙’과 ‘특권’으로 멍이 들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목표를 성취할 수 없는 청년들은 꿈과 희망을 포기하고 있다. 국민들은 아직도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둘째, ‘세대교체’에 대한 열망이다. 조기 대선을 촉발한 촛불정신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했지만 아직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기득권에 막혀 있다. 개혁을 가로막는 국회가 재구성되어야만 정치와 선거가 시민을 제대로 대표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이 총선에서 경쟁해야 하는 또 다른 가치는 ‘권력의 분산’이다. 민주화로 이룬 ‘19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 대통령은 한 번뿐인 임기 5년 내에 모든 걸 이루고자 자연스레 권력을 독점하게 되고 우리 정치는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 끊임없는 진영 싸움을 펼친다. 그러다 보니 국회는 물리력을 행사하는 전투의 공간이 되고 국회, 정당, 지역, 이념이 두 개의 축을 이뤄 벼랑 끝 진영 대결의 정치가 고착된다. 권력을 분산해야만 책임도 공유할 수 있고 타협의 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 연동형 비례제는 극단적 진영 정치를 탈피해 권력 분산과 책임 공유를 위한 첫걸음이었지만 누더기가 되었고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어떤 후보를 원할까? 무엇보다도 도덕적으로 깨끗한 후보를 바라는데, 이는 단순히 범죄 전력의 유무가 아니라 낡은 특권의식에 물들지 않은 후보를 의미한다. 기득권의 낡은 관행에 젖어 편법과 반칙에 익숙하지 않은, 공정과 정의를 최우선의 가치로 존중하는 후보를 원한다. 진영 정치에 매몰돼 있지 않고, 인생을 살면서 정치에 진 빚이 없어 기성 정치로부터 생각과 행동이 자유로운 후보를 기대한다.

정치학의 오래된 관심으로 ‘수탁자(trustee) 대 대리인(delegate)’ 논쟁이 있다. 국민이 뽑은 대표자가 어떤 가치를 갖고 유권자를 대변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다. 의원들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중시하는 수탁자 모델보다는 지역구민들의 요구와 이익에 충실한 대리인 모델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의원들이 재선을 위해서는 지역구 민심에 충실해야 하고 공천받기 위해서는 중앙당에 충성해야 하는 현실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선을 명분으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공천을 받기 위해 부정부패에 연루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영국의 보수주의 이론가인 에드먼드 버크는 정치가의 이권 개입, 부패와 권력 남용을 최악의 정치로 지적한 바 있다. 그가 제안한 바람직한 정치 지도자인,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고 합의와 개혁을 추구하는 깨끗한 인물은 우리에게 시급한 정치인이다. 공허한 포퓰리즘 공약이 아닌 실현 가능한 개혁 방안을 제시하는 정당과 후보자에게 주목하자.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진영논리에 기댄 공허한 정치 구호가 아닌, 국민의 삶을 바꾸는 비전을 제시하길 기대한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총선#공정한 사회#세대교체#애드먼드 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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