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애착이불’은 무엇인가요[Monday DBR]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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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체로 ‘쪽수’에 약하다. 우리 편 5명을 이끌고 적진에 쳐들어갔는데 적군 17명이 기다리고 있으면 크게 위축된다. 똑같이 11명씩 나와서 공을 차지만 10만 관중이 모두 상대편을 응원하면 역시 크게 위축된다.

언외(言外)의 줄다리기를, 그것도 일대다(一對多)의 싸움을 이기고자 한다면 대칭 전력으론 불가능하다. 쪽수의 중과(衆寡)를 무시하는 비대칭 수단이 필요한데, 맹자(孟子)는 이러한 전술무기를 ‘부동심(不動心)’이라고 불렀다. 창끝이 지척에서 눈동자를 겨누고 들어와도 끔뻑하지 않는 마음으로 축구를 하면 10만 관중이 상대 팀을 응원하는 원정경기에서도 중동의 모래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스누피로 유명한 만화 피너츠에 등장하는 라이너스는 늘 애착이불을 가지고 다닌다. 이불 없이는 어느 곳에도 가지 못하고 이불과 함께라면 어떤 곳도 두려울 게 없다. 아이들은 애착이불을 만질 뿐 아니라 쪽쪽 빨기도 한다. 아기공룡 둘리에 등장하는 희동이가 쪽쪽이를 물고 안정을 되찾듯 어른들도 불안한 순간에는 껌 같은 것을 씹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

실제로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을 꼽으라면 반드시 한 손 안에 들어갈 알렉스 퍼거슨 경은 그 위대한 업적만큼이나 쉬지 않고 껌을 씹어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강연을 할 때마다 쉬지 않고 자신의 코를 쓰다듬는다. 지제크가 하루 종일 코를 만지는 횟수와 퍼거슨 경이 같은 시간 동안 껌을 씹는 횟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을지 예단하기 어려울 정도다.

염주와 묵주를 만지작거리는 게 기도와 명상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참고할 만하다. 염주를 쥐고 돌린다고 중생이 바로 해탈할 리는 없다. 그래도 조몰락거릴 물건이 없는 것보단 있는 쪽이 낫다. 행운의 징표도 중요하다. 우리는 목걸이, 반지, 클로버, 십자가, 부적, 브로치 같은 것들을 목, 손, 룸미러 혹은 가슴에 달고 다닌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한번 쓱 만져보기도 하고, 꺼내서 둘러보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시시때때로 그 물건이 나와 같은 공간에 있음을 확인하고 용기를 얻곤 한다. 이러한 진정 효과는 진실이요, 결코 거짓이 아니다.

마블 영화 속 등장인물인 캡틴 아메리카는 분신과 같은 방패로 몸을 보호하고 적을 쓰러뜨린다. 하지만 때때로 엄습하는 불안한 마음은 방패가 아니라 옛 연인의 사진이 들어간 작은 나침반으로 막아낸다. 그렇게 힘세고 멘털이 강한 사람도 애착이불을 만지작거리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데, 우리 같은 범인(凡人)이야 별수 있겠나.

이처럼 작고 평범한 물품들이 우리의 마음에 실질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누군가는 그것들 안에 어떤 특별한 힘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긴장이 풀리지 않아 걱정이라면 특별한 힘을 가진 네잎클로버나 십자가, 마네키네코(招き猫·손 흔드는 고양이상), 관음상 등을 가방에 챙겨가도록 하자. 마법의 나뭇잎을 거머쥔 아기 코끼리 덤보처럼 여러분이 멋지게 날아오르게 될지 또 누가 아는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역시 임시방편이다. 중대사를 앞두고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고, 우리 마음이 두려워하는 것은 실패이며, 실패 중에 가장 큰 실패는 죽음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부동심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크고 의연한 용기로부터 나온다.

로마를 향해 제 발로 걸어 들어가 십자가형을 당했다는 베드로는 그렇게 하다가 죽을 줄 몰라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목숨이 귀한 줄 몰랐던 것도 아니다. 용담호혈(龍潭虎穴)에 들어가겠노라고 반석과 같이 결심한 뒤 그의 마음이 다시는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義)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義)를 취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각오가 됐다면 굳이 염주나 목걸이, 십자가나 관음상 등을 들고 가지 않더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 원고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91호에 실린 ‘누구에게나 애착이불 하나씩은 있다’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안동섭 중국 후난대 악록서원 조교수 dongsob@unix.ox.ac.uk
#부동심#애착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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