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까지 춤 소재로 활용하는 그는 ‘질문하는 안무가’

김기윤 기자 입력 2020-02-27 03:00수정 2020-03-0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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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호 한예종 무용원 교수
4월 신작 ‘비욘드 블랙’
“무용수에 질문 던지고 토론하며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 탐구”
서울 마포구 복합문화공간 탈영역우정국에서 열린 ‘미래의 환영’ 미디어아트 전시 앞에서 25일 신창호 안무가가 포즈를 취했다. 그는 “‘비욘드 블랙’ 공연에 앞서 열린 이 전시를 통해 작가들과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암흑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것을 과거 현재 미래의 입장에서 서술한다면? 구시대적 산물이라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당신의 일상 속 초월적 현실이란?”

머리를 쥐어짜내야 하는 철학이나 논술고사 문제가 아니다. 여느 안무 스튜디오와 다를 것 없는 서울 서초구의 한 연습실에서는 신창호 안무가(43·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가 ‘비욘드 블랙’에 출연하는 무용수들에게 이 같은 질문을 먼저 던진다. 무용수들은 20개의 형이상학적 물음에 각자의 답을 내놓고 안무 연습 전부터 토론을 벌인다. 신창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인공지능(AI)을 현대무용 무대로 끌어왔다.

무용과 연관짓기 힘든 소재를 인간의 몸으로 풀어내는 ‘질문하는 안무가’ 신창호가 신작 ‘비욘드 블랙’을 4월 무대에 올린다. 서울 마포구의 한 전시장에서 25일 만난 그는 “무용이 무대에만 갇히면 관객과 대화할 수 없다.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담아 어떻게 하면 변하는 사회상을 표현할 수 있을지 늘 질문한다”고 했다.

그의 행보를 꾸준히 지켜본 이라면 이번 실험도 낯설지만은 않다. 그는 2002년 이라크전쟁을 소재로 한 ‘노코멘트’를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현대무용 전공자들로 구성된 LDP무용단 대표를 2009년 최연소로 맡아 고령화시대 ‘노화’를 주제로 작품을 냈다. 최근작 ‘맨메이드’ ‘IT’는 신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한 작품이다. 시의성, 대중성, 실험성을 갖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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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10주년을 맞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시즌 개막작 ‘오프닝’에서 선보일 ‘비욘드 블랙’ 역시 그 연장선에 놓였다. 블랙은 AI가 불러온 미지의 세계를 뜻한다. 그는 “미지의 영역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AI를 활용한 안무 작업 특성상 세 단계를 거친다. 크로마키를 배경으로 무용수의 움직임을 촬영해 그 데이터를 AI에 입력하면 AI는 무용수 8명의 패턴을 분석해 움직임을 모방 생산한다. 무용수들은 이를 다시 작품에 맞게 재해석한 ‘AI적 동작’을 내놓는다. 그는 “AI를 활용한 안무는 아마 세계 최초일 것”이라며 웃었다.

“기억력이 안 좋아 모든 걸 메모한다”는 그의 휴대전화 메모장에는 신체역학, 매체과학, 미학 이론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와 학술서에서 찾은 이론을 일목요연하게 직접 정리한다. “언젠가는 작품에 꼭 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리서치 겸 메모는 습관이 됐고, 작품 세계의 단단한 토대가 됐다. 단순히 ‘이색적인 소재만 좇는다’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발레를 전공한 어머니가 그에게 현대무용을 권하며 던진 말은 지금도 큰 지침이 됐다.

“틀에 갇히지 않는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춤을 추라고 하셨어요.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 있지만 관객이 가상현실 속에서 무용수의 땀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김기윤 기자 pep@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한국예술종합학교#신창호#비욘드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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