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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美CIA 소유 회사가 암호장비 판매… 세계 120개국 기밀 수십년간 빼내”

입력 2020-02-13 03:00업데이트 2020-02-13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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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 美-獨 비밀문건 입수 보도
서독과 손잡고 스위스 업체 위장… 암호장비 ‘크립토’ 세계시장 장악
中-러는 서방연계 의심 사용 안해… 2018년 회사 매각하며 작전 중단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스위스 암호장비회사 ‘크립토AG’를 몰래 소유한 채 수십 년간 세계 120여 개국의 기밀을 무차별적으로 빼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한국 일본 등 각국 정부가 신뢰하며 사용해온 암호 장비가 CIA가 심은 조작 프로그램에 의해 첩보 제공 통로로 변질돼 큰 충격을 안긴다.

미 워싱턴포스트(WP), 독일 공영방송 ZDF, 스위스 SRF방송은 11일 CIA와 독일 정보당국의 기밀 문건을 입수해 “CIA가 옛 서독 정보기관 BND와 손잡고 크립토의 암호 장비를 이용해 동맹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타국의 암호 통신문을 해독하고 기밀을 빼냈다”고 폭로했다. 크립토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을 위한 암호 장비를 생산하며 미 정부와 연을 맺었다.

크립토 고객들은 회사의 실제 주인이 CIA임을 알지 못한 채 장비를 구매했다. 1970년대부터는 미 국가안보국(NSA)도 기밀 탈취에 가담했다.

미국은 1950년대 중국 소련 북한의 암호를 해독할 수 없게 되자 ‘루비콘’이란 이름의 이 작전을 추진했다. 미국과 독일은 크립토를 운영하기 위해 양국의 간판 기업인 모토로라와 지멘스를 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서독 통일 후인 1993년 독일 BND는 위험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루비콘 작전에서 손을 뗐다. 독일 지분을 사들여 작전을 이어가던 CIA도 2018년 회사를 매각했다. 국제 보안시장에서 온라인 암호 기술이 대중화, 고급화하면서 크립토의 위상이 떨어졌다고 WP는 전했다.

CIA와 BND는 각국의 기밀 정보를 취득하면서 장비 판매료로도 수백만 달러를 챙겼다. 1981년 크립토의 최대 고객은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이란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이라크 리비아 요르단 한국 등이 뒤를 이었다. 다만 소련, 중국, 북한 등은 크립토가 서방과 연계됐다고 의심해 이를 이용하지 않았다.

미국은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 협상을 중재할 때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참모들과 논의하는 내용을 모두 엿들었다. 또 1979년 이란 테헤란 대사관에서 발생한 444명의 미국인 인질 사태 때 이슬람 율법학자들을 감시했다. 미국은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대서양 포클랜드제도에서 벌인 전쟁 때도 아르헨티나군의 정보를 빼내 핵심 동맹 영국에 넘겼다. WP는 “1980년대 미 정보기관이 입수한 해외 첩보의 40% 정도가 루비콘 작전으로 입수됐다. CIA 역사상 가장 대담한 작전”이라고 지적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구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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