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이 글에 시비 걸려는 자, 썩 나서라!

이진 기자 입력 2020-02-10 16:00수정 2020-03-16 14:51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1920년 4월 1일

플래시백

‘창천에 태양이 빛나고 대지에 청풍이 불도다’로 시작하는 동아일보 창간사는 1년 전 3·1운동 때 울려 퍼진 기미독립선언서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먼저 세계의 흐름을 읽는 눈이 같았습니다. 독립선언서에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거하고 도의의 시대가 내하도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창간사에는 ‘강력에 기본한 침략주의와 제국주의는 권리를 옹호하는 평화주의와 정의를 근본한 인도주의로 전환코자 하난도다’라는 표현이 나오죠. 독립선언서의 ‘신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에 투사하기 시하다도’는 창간사 속의 ‘신시대의 서광이 멀리 수평선상에 보이도다’와 사실상 같습니다.

또 독립선언서가 ‘민족의 항구여일한 자유발전을 위해’ 독립을 외친 것처럼 창간사 역시 “자유와 발달의 먼 길을 혼신의 힘으로 가겠다”고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은 창간사의 3대 주지인 △조선민중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노라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 △문화주의를 제창하노라와 틀이 동일합니다. 이렇듯 동아일보 창간사 속에는 ‘3·1운동의 정신’이 곳곳에 녹아있습니다. 3·1운동 때 우리 민족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 덕분에 동아일보가 창간됐기 때문입니다.

동아일보 창간사는 주간이었던 당시 26세의 청년 장덕수가 썼습니다. 부산에서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마무리했다고 하죠. 비록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썼어도 내용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지 “이 글이 잘못됐다고 하는 이가 있으면 싸움이라도 하겠다”며 강한 자부심을 내보였다고 창간 기자 한 사람이 증언을 남겼습니다. 자신감 덕분일까요? 창간사는 최남선의 ‘기미독립선언서’, 한용운의 ‘조선독립의 서’와 함께 한국 근현대 3대 명문으로 꼽힙니다.

장덕수 주간은 1916년 일본 와세대대학 정치경제학과를 2등으로 졸업했습니다. 고학으로 돈을 벌어가며 공부했는데도 우수한 성적을 거뒀지요. 그뿐만 아니라 장 주간은 웅변으로 일본인들을 제압했습니다. 대학 2학년 때 전일본대학생웅변대회에 나가 ‘동양평화와 일본의 지위’라는 주제를 목청 높이 외쳐 일본 학생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죠.

주요기사
1919년 11월에는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東京)에서 이 일본어 실력으로 조선이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당당하게 펼쳤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몽양 여운형의 독립 주장을 통역하는 장덕수의 웅변에 압도당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아일보 창간사를 소리 내 읽어보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장 주간이 웅변가답게 글의 호흡을 조절한 것 같습니다.

3대 주지는 1920년 1월 발기인총회 직후 회사 고위급 인사들이 모여 정했습니다. 첫 번째인 ‘조선민중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노라’는 4개월 뒤 ‘조선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노라’로 바뀝니다. 창간 시점에 ‘민족’을 분명하게 내세울 수 없어서 일단 ‘민중’을 앞세웠던 것이었죠. 두 번째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에서 ‘민주주의’는 당시 일본에서는 잘 쓰지 못하는 용어였습니다. 주권이 천황에게 있다는 일본에서는 대신 ‘민본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했죠. 세 번째 ‘문화주의를 제창하노라’는 일제에 국토를 빼앗겼지만 한국인의 정신만은 잃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3대 주지는 100년이 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간사 끝부분에는 중국 고전인 주역(周易)의 한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各正性命(각정성명)하야 保合大和(보합대화)하는’은 주역 건괘(乾卦)에 있는 ‘乾道變化, 各正性命, 保合大和, 乃利貞’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각각 성명을 바르게 해 큰 조화를 보전하고 합한다’는 뜻이죠. 새 시대에 대한 갈망은, 200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가 봅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원문

主旨(주지)를 宣明(선명)하노라…1920년4월1일1면

蒼天(창천)에 太陽(태양)이 빗나고 大地(대지)에 淸風(청풍)이 불도다. 山靜水流(산정수유)하며 草木昌茂(초목창무)하며 百花爛發(백화난발)하며 鳶飛魚躍(연비어약)하니 萬物(만물) 사이에 生命(생명)과 光榮(광영)이 充滿(충만)하도다.

東方亞細亞(동방아세아) 無窮花(무궁화) 동산 속에 二千萬(이천만) 朝鮮民衆(조선민중)은 一大(일대) 光明(광명)을 見(견)하도다. 空氣(공기)를 呼吸(호흡)하도다. 아、實(실)노 살앗도다. 復活(부활)하도다. 장챠 渾身勇力(혼신용력)을 奮發(분발)하야 멀고 큰 道程(도정)을 健行(건행)코자 하니 그 일홈이 무엇이뇨 自由(자유)와 發達(발달)이로다.

世界人類(세계인류)의 運命(운명)의 大輪(대륜)은 한 번 回轉(회전)하도다. 「쯔아」는 가고 「카이사」―는 쪼기도다. 資本主義(자본주의)의 탐람은 勞動主義(노동주의)의 挑戰(도전)을 밧고 强力(강력)에 基本(기본)한 侵略主義(침략주의)와 帝國主義(제국주의)는 權利(권리)를 擁護(옹호)하는 平和主義(평화주의)와 正義(정의)를 根本(근본)한 人道主義(인도주의)로 轉換(전환)코자 하난도다. 그런즉 人民(인민)으로 말미암은 自由政治(자유정치)와 勞動(노동)으로 말미암은 文化創造(문화창조)와 正義(정의) 人道(인도)에 立脚(입각)한 民族聯盟(민족연맹)의 新世界(신세계)가 展開(전개)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吾人(오인)은 夢想家(몽상가)가 아니라 또한 現實(현실)에 卽(즉)한 者(자)로다. 엇지 理想(이상)과 하날만 보고 事實(사실)과 따를 忘却(망각)하리오. 世界(세계)의 大勢(대세)를 如實(여실)히 論(논)할진대 一便(일편)에 新勢力(신세력)이 잇난 同時(동시)에 又(우) 一便(일편)에 此(차)와 對立(대립)하야 舊勢力(구세력)이 잇서 서로 爭鬪(쟁투)하난도다. 換言(환언)하면 政治(정치)로나 經濟(경제)로나 社會(사회)로나 文化(문화)로나 各(각) 方面(방면)에 解放(해방)과 改造(개조)의 運動(운동)이 잇난 同時(동시)에 곳 이 모든 것을 抑壓(억압)하랴 하는 一大運動(일대운동)이 存在(존재)하도다. 이는 事實(사실)이라 뉘― 敢(감)히 否認(부인)할 바―리오. 嗚呼(오호라). 新舊衝突(신구충돌)과 進步保守(진보보수)의 닷홈이 엇지 이 時代(시대)에만 特有(특유)한 배리오. 온 歷史(역사)를 通(통)하야 常存(상존)하는 것이로다.

그러하나 一陽來復(일양래복)에 積雪堅氷(적설견빙)이 融解(융해)하고 百花萬物(백화만물)이 各敍其生(각서기생)함은 그때가 옴이라 누가 能(능)히 膨然(팽연)한 春(춘)의 힘을 抑拒(억거)하리오. 이와갓치 新舊(신구)의 衝突(충돌)은 임의 新(신)의 올 때 됨을 表示(표시)함이오 舊(구)의 갈 때 됨을 鳴鼓(명고)함이라. 必然(필연)의 勢(세)는 人力(인력)으로 左右(좌우)치 못할 바―라. 新(신)이 期必(기필)코 成功(성공)하고 舊(구)가 반드시 退去(퇴거)하리니.

吾人(오인)은 新時代(신시대)가 임의 왓다 아니하노라. 新世界(신세계)가 발서 展開(전개)되엿다 아니하노라. 오즉 黑暗(흑암) 中(중)으로서 爭鬪(쟁투)로써 解産(해산)의 苦(고)를 가지고 雄雄(웅웅)한 新文明(신문명)의 婆(파)와 明明(명명)한 新時代(신시대)의 曙光(서광)이 멀리 水平線上(수평선상)에 보이도다 하노라.

뵈이도다, 보라. 幾千萬(기천만)의 男女民衆(남녀민중)이 그를 向(향)하야 努力(노력)함을 것을.

이러한 때에 東亞日報(동아일보)는 生(생)하도다. 噫(희)라. 그 生(생)이 엇지 偶然(우연)하리오.

回顧(회고)컨대 日韓合倂(일한합병) 于玆(우자) 十年(십년). 그 사이에 朝鮮民衆(조선민중)은 一大惡夢(일대악몽)의 襲(습)한 바 되엿섯도다. 그가 또한 사람이라 엇지 思想(사상)과 希望(희망)이 업섯스리오. 그러나 能(능)히 敍(서)치 못하며 그가 또한 社會(사회)라 엇지 集合的(집합적) 意思(의사)와 活力(활력)의 衝動(충동)이 업섯스리오. 그러나 能(능)히 達(달)치 못하며 그가 또한 民族(민족)이라 엇지 固有(고유)한 文明(문명)의 特長(특장)과 生命(생명)의 微妙(미묘)함이 업섯스리오. 그러나 敢(감)히 發(발)치 못하엿스니 實(실)노 個人(개인)이 間或(간혹) 經驗(경험)하는 바 부르지지고자 하되 開口(개구)치 못하며 다름질하고자 하되 用身(용신)치 못하는그 惡夢(악몽)에 朝鮮(조선) 二千寓無辜民衆(이천우무고민중)은 빠젓섯도다.

이는 곳 死地(사지)라 陷穽(함정)이라. 自由(자유)와 發達(발달)을 期(기)치 못할 곳이엿섯도다. 朝鮮民衆(조선민중)은 實(실)노 苦痛(고통)을 感(감)하도다. 或(혹)은 울고 或(혹)은 怒(노)하엿도다. 엇지 現代民衆(현대민중)뿐이라 하리오. 四千年(사천년) 歷史的(역사적) 生命(생명)이 憤慨(분개)하도다. 그는 朝鮮人民(조선인민)이 홀노 그 生(생)을 達(달)치 못하며 그곳을 得(득)치 못함으로 말미암음이라.

그러나 때가 한 번 變(변)하야 言論自由(언론자유)가 多少(다소) 容認(용인)된다 하매 朝鮮民衆(조선민중)은 그의 意思(의사)를 表現(표현)하며 그의 前途(전도)를 引導(인도)하는 親舊(친구)가 될 者(자)를 熱望(열망)으로 期待(기대)하얏도다.

이에 東亞日報(동아일보)가 生(생)하얏스니 그가 엇지 偶然(우연)하다 하리오. 實(실)노 民衆(민중)의 熱望(열망)과 時代(시대)의 動力(동력)으로 生(생)하다 하노라.

主旨(주지)를 左(좌)에 宣明(선명)하야 써 創刊辭(창간사)에 代(대)코자 하노라.

(一(일)) 朝鮮民衆(조선민중)의 表現機關(표현기관)으로 自任(자임)하노라.

社會的(사회적) 政治的(정치적) 經濟的(경제적) 少數特權階級(소수특권계급)의 機關(기관)이 아니라 單一的(단일적) 全體(전체)로 본 二千萬(이천만) 民衆(민중)의 機關(기관)으로 自任(자임)한즉 그의 意思(의사)와 理想(이상)과 企圖(기도)와 運動(운동)을 如實(여실)히 表現(표현)하며 報道(보도)하기를 期(기)하노라.

(二(이)) 民主主義(민주주의)를 支持(지지)하노라.

이는 國體(국체)나 政體(정체)의 形式的(형식적) 標準(표준)이 아니라 곳 人類生活(인류생활)의 一大原理(일대원리)요 精神(정신)이니 强力(강력)을 排斥(배척)하고 人格(인격)에 固有(고유)한 權利義務(권리의무)를 主張(주장)함이라. 그 用(용)이 國內政治(국내정치)에 處(처)하야는 自由主義(자유주의)요 國際政治(국제정치)에 處(처)하야는 聯盟主義(연맹주의)요 社會生活(사회생활)에 處(처)하야는 平等主義(평등주의)요 經濟組織(경제조직)에 處(처)하야는 勞動本位(노동본위)의 協調主義(협조주의)라.

特(특)히 東亞(동아)에 在(재)하야는 各(각) 民族(민족)의 權利(권리)를 認定(인정)한 以上(이상)의 親睦團結(친목단결)을 意味(의미)하며 世界全局(세계전국)에 在(재)하야는 正義人道(정의인도)를 承認(승인)한 以上(이상)의 平和聯結(평화연결)을 意味(의미)함이라.

更言(갱언)하건대 그 體(체)는 暴力强行(폭력강행)을 不可(불가)라 하고 良心(양심)의 權威(권위)와 權利(권리)의 主張(주장)으로써 人生各般(인생각반)의 關係(관계)를 規律(규율)코자 함이니 古者(고자)의 所謂(소위) 王道(왕도)의 精神(정신)이 곳이라. 吾人(오인)은 天下人民(천하인민)의 慶福(경복)과 光榮(광영)을 爲(위)하야 이를 支持(지지)하노라.

(三(삼)) 文化主義(문화주의)를 提唱(제창)하노라.

이는 個人(개인)이나 社會(사회)의 生活內容(생활내용)을 充實(충실)히 하며 豊富(풍부)히 함이니 곳 富(부)의 增進(증진)과 政治(정치)의 完成(완성)과 道德(도덕)의 純粹(순수)와 宗敎(종교)의 豊盛(풍성)과 科學(과학)의 發達(발달)과 哲學藝術(철학예술)의 深遠奧妙(심원오묘)라. 換言(환언)하면 朝鮮民衆(조선민중)으로 하야곰 世界文明(세계문명)에 貢獻(공헌)케 하며 朝鮮江山(조선강산)으로 하야곰 文化(문화)의 樂園(낙원)이 되게 함을 高唱(고창)하노니 이는 곳 朝鮮民族(조선민족)의 使命(사명)이요 生存(생존)의 價値(가치)라 思惟(사유)한 緣故(연고)라.

要(요)컨대 東亞日報(동아일보)는 太陽(태양)의 無窮(무궁)한 光明(광명)과 宇宙(우주)의 無限(무한)한 生命(생명)을 三千里(삼천리) 江山(강산) 二千萬(이천만) 民衆(민중) 가운데 實現(실현)하며 暢達(창달)케 하야 써 自由發達(자유발달)의 局(국)을 잇고자 하노니 (一(일)) 朝鮮民衆(조선민중)이 各正性命(각정성명)하야 保合大和(보합대화)하는 一大文化(일대문화)의 樹立(수립)을 期(기)하며 (二(이)) 天下萬衆(천하만중)이 各得其所(각득기소)하야 上下與天地(상하여천지)로 同流(동류)하는 一大樂園(일대낙원)을 建設(건설)함에 同力共助(동력공조)하기를 願(원)함은 本(본) 日報(일보)의 主旨(주지)로다.

그러나 本社(본사)의 前途(전도)가 甚(심)히 險(험)하도다. 그의 運命(운명)을 누가 可(가)히 豫測(예측)하리요. 吾人(오인)은 오즉 民衆(민중)의 親舊(친구)로서 生死進退(생사진퇴)를 그로 더부러 한 가지 하기를 願(원)하며 期(기)하노라.
현대문

창간 취지를 널리 밝히노라

푸른 하늘에 태양이 빛나고 드넓은 대지에 맑은 바람이 분다. 고요한 산에 맑은 물이 흐르며 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온갖 꽃들이 만발하며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힘차게 뛰어오르니 천하 만물에 생명과 밝은 빛이 가득하다.

동쪽 아시아의 무궁화동산 속에 2000만 조선 민중은 눈부신 빛을 보며 새로운 공기를 호흡한다. 이는 실로 살아 있음이고 부활이다. 혼신의 힘을 내 저 먼 길을 가려고 하니 그 이름이 무엇인가. 다름 아닌 자유와 발달이다.

세계 인류 운명의 큰 수레바퀴는 한 번 회전했다. ‘차르 황제’는 떠나고 ‘카이저 황제’는 쫓겨났다. 자본주의의 탐욕은 신성한 노동주의의 도전을 받고 무력에 기초한 침략주의와 제국주의는 권리를 옹호하는 평화주의와 정의에 바탕한 인도주의로 바뀌려 한다. 그러므로 인민에서 비롯된 자유정치와 노동에 기초한 문화창조와 정의 인도에 입각한 민족연맹의 새 세계가 열리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몽상가가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하늘과 이상만 바라보고 이 땅과 현실을 망각하겠는가. 세계의 대세를 있는 그대로 따져보면 한 쪽엔 새로운 세력이 있는 동시에 또 한 쪽엔 이에 맞서는 낡은 세력이 있어 서로 싸우고 있다. 바꿔 말하면 정치로나 경제로나 사회로나 문화로나 각 분야에 해방과 개조의 운동이 있는 동시에 이 모든 것을 억누르려는 커다란 움직임이 존재한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아, 신구의 충돌과 진보 보수의 다툼이 어찌 이 시대에만 있는 일일까. 그건 인류 역사 어느 시대에도 늘 있어 온 일이었다.

그러나 볕이 다시 드니 쌓인 눈과 단단한 얼음이 녹고 온갖 만물이 하나둘 다시 살아나는 것은 분명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이다. 누가 감히 그 의연한 봄의 힘을 가로막겠는가. 이처럼 신구의 충돌은 이미 새로운 시대가 오는 때를 보여주는 것이고 옛 시대가 물러갈 때를 북소리를 울려 알리는 것이다. 필연적인 흐름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새로움이 기필코 성공하고 낡음은 반드시 물러갈 것이다.

우리는 새 시대가 벌써 왔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세계가 벌써 전개되었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투쟁하고 해산의 고통을 거쳐 새 문명의 웅대한 한 자락과 밝디밝은 새 시대의 서광 한 줄기가 저 멀리 수평선 위에 보이기 시작한다.

보인다, 보라. 수천만의 남녀민중이 이것을 향해 모두 몸부림치고 있음을.

이러한 때에 동아일보는 태어났다. 아, 동아일보 창간을 어떻게 우연이라 할 것인가. 돌아보면 한일강제병합이 일어난 지 10년, 그 사이에 조선 민중은 일대 악몽의 늪에 빠진 처지가 되었다. 조선 민중 또한 사람인지라 어떻게 사상과 희망이 없었을까만 그것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 또한 사회인지라 어떻게 집단적 의사표현과 기운찬 충동이 없었을까만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그 또한 민족인지라 어찌 고유한 문명의 특장과 생명의 미묘함이 없었을까만 그것을 용감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가끔 개인이 겪은 바를 부르짖고 싶어도 입을 열지 못했고 달음질치고 싶어도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악몽에 2000만 조선 민중은 빠져 있었다.

이것은 바로 사지(死地)였고 함정이었다. 자유와 발달을 기약할 수 없는 곳이었다. 조선 민중은 실로 고통스러웠다. 혹은 울고 혹은 분노하였다. 어찌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우리들만이겠는가. 4000년의 역사적 생명까지 모두 분개하였다. 이는 조선인민이 홀로 그 삶을 펼치지 못하고 그 터전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여 언론의 자유가 다소 허용된다고 하니, 조선 민중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그 앞길을 이끌어주는 친구를 열렬히 기대하고 있다.

이에 동아일보가 태어났으니 그것을 어떻게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실로 민중의 열망과 시대의 동력으로 태어났다고 하겠다.

그 기본 뜻을 뚜렷하게 밝힘으로써 창간사를 대신하고자 한다.

1. 조선 민중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한다.

소수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특권계급의 기관이 아니라 2000만 민중 전체의 기관으로 자임한다. 그 민중의 의사와 이상과 목표와 희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보도할 것을 약속한다.

2.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이는 국체(國體)나 정체(政體)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삶의 원리이자 정신을 의미한다. 무력을 배척하고 개인의 인격에 기초한 권리와 의미를 주장한다. 그 수단은 국내 정치에서는 자유주의이고, 국제 정치에서는 연맹주의다. 사회생활에서는 평등주의이고, 경제에서는 노동 본위의 협조주의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각 민족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는 친목과 단결을 의미한다. 전 세계에서는 정의와 인도를 승인하는 이상의 평화적 연대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그 본체는 폭력과 무력을 거부하고 양심의 권위와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삶의 여러 관계를 규율하려고 하는 것이니, 옛 왕도의 정신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만천하 백성들의 경복(慶福)과 광영을 위하여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3. 문화주의를 제창한다.

이는 개인이나 사회의 삶을 충실하고 풍부하게 하기 위함이다. 곧 부를 늘리고 정치를 완성하고 도덕을 순수하게 하고 종교를 풍요롭게 하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철학과 예술을 깊고 오묘하게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조선 민중이 세계 문명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하고 삼천리강산을 문화의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니, 이는 바로 우리 조선 민족의 사명이요 생존의 가치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요컨대 동아일보는 태양의 무궁한 광명과 우주의 무한한 생명을 삼천리강산, 2000만 민중 속에서 펼치고 실현하며 나아가 자유의 발달에 이르고자 한다. 그리하여 첫째, 조선 민중이 각자의 인성과 천명을 바르게 하고 서로 화합하는 위대한 문화를 이룩하기를 꾀하고 둘째, 조선 민중이 자신의 위치에서 위로는 하늘과 아래로는 땅에 함께 어우러진 일대 낙원을 건설하는 데 힘을 모으도록 하는 것이 동아일보 창간의 근본적인 취지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앞날은 아주 험난하다. 그 운명을 과연 누가 예측할 것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오직 조선 민중의 동지로서 그들과 더불어 생사 진퇴를 함께하기를 약속한다.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