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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좋아하는 가수 노래가 한가득…추억 담은 ‘카세트 테이프’ 인기

입력 2020-01-31 19:23업데이트 2020-01-3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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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면에는 ‘Wish You Were Here’의 전곡(44분 9초)을, B면에는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전곡(42분 50초)을 담았다. 영국의 전설적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1970년대 명작 음반 둘이 90분짜리 카세트테이프 하나에 쏙 들어간 셈이다. 플로이드광(狂)이라면 수집 욕구에 군침을 흘릴 제품이지만 백만 원을 줘도 보통 가게에선 못 산다. 이재수 씨(51)가 취미로 만든 수작업 믹스테이프(mixtape)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카세트테이프의 매력에 다시 빠진 뒤 고급 카세트덱을 장만한 이 씨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공포영화 ‘유전’과 ‘미드소마’의 사운드트랙 카세트테이프도 손수 제작했다. 앨범 표지까지 컬러 프린트해 넣어 그럴 듯하다. 그는 “고음질 스트리밍 서비스를 컴퓨터에 켜두고 이를 덱에 음향케이블로 연결해 녹음한다. 간혹 같은 테이프를 두세 장 만들어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한다”고 했다.

소량 제작 카세트의 세계가 있다. 기존 음반시장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그들만의 음악세계’다.

●‘소소하지만 장난은 아닌, 내 카세트 자랑’…오프라인 모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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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카세트를 듣는 사람들(카듣사)’ 카페가 개설됐다. 뉴트로(새 복고) 열풍과 함께 오프라인 중고 음반매장과 카세트 판매처가 늘면서 이런 정보가 궁금한 이들이 늘더니 현재는 회원수가 8500명을 상회한다. 워크맨이 주요소품인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 2편(각각 2014년, 2017년 개봉)의 인기도 한몫했다. 이후 ‘카세트데크’(2017년 개설), ‘카세트클럽’(2018년 개설) 같은 다른 인터넷 카페도 줄을 이었다.

이른바 ‘진성 회원’들의 교류는 자연스레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졌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카페나 음악 감상 공간에서 만나 각자 만들어온 믹스테이프를 감상하거나 교환하는 행사. 각자 제작해온 것을 소소히 공유하거나 자랑하는데 테이프의 종류가 다양하다. 카세트로 정식 출시되지 않은 음반을 고스란히 공테이프에 담은 경우, 여러 가수의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섞어 녹음한 것, 한 음악가에 대한 자기 관점의 베스트 곡 모음집을 만든 작품 등.

믹스테이프 동호인들에게 최대 난제는 원자재격인 공테이프 수급. 마니아들을 겨냥해 북유럽 헤비메탈 그룹, 국내 인디 밴드, 10대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까지 요즘 음악가들의 신작은 오히려 복고 붐을 타고 완제품 카세트로 많이 나오지만, 공테이프만은 21세기 이후 생산처와 판매처를 찾기 힘들다. 이재수 씨는 “미국, 일본 등지에 온라인 주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는 벼룩시장이나 창고 세일에서 공테이프만 수집해 파는 전문 판매자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품질과 재질에 따라 장당 3000원짜리부터 2만 원짜리까지 있다.

●음악가들, 신작 발표 수단으로도… 저작권 침해는 주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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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량 제작 카세트로 신작을 발표하는 음악가들도 늘었다. 기존 유통망 대신 온·오프라인 대안 공간이 판매처다. DIY(자가제작)형 음원 공유 서비스 ‘밴드캠프’가 대표적이다. 시티팝(city pop) 장르에서 팬덤을 이끄는 음악가 ‘나이트 템포’는 거의 모든 앨범을 카세트로 발매하는데 낼 때마다 매진이다. 아예 LP나 CD 대신 카세트로 디제잉을 하는 이들도 있다. 뉴트로, 시티팝, 베드룸 팝(침실에서 만든 팝), 로파이(lo-fi·의도적 저음질) 등 여러 트렌드의 교집합에 카세트의 작은 돌풍이 분다.

‘다운캣 레코즈’(2018년 설립) 등 소량 제작 카세트 전문 회사도 생겼다. 한 카세트 제조 기획사 관계자는 “음반당 200~400장의 카세트를 찍어낸다. 독특한 디자인을 위해 캐나다의 공장에 맡길 경우엔 제작비가 개당 7000~8000원에 이르러 웬만한 CD보다 원가가 더 든다”고 말했다. 소비자 가격은 1만5000원 안팎에 이른다. 음악 관련 사이트 대신 디자인 제품 전문숍,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를 통해 판매하는 경우도 많다. 일부 의류업체는 옷을 사면 자가 제작 한정판 테이프를 선물한다.

어떤 음악가들에게 소량 카세트는 저작권 저촉 회피 수단으로도 쓰인다. 다른 음악가가 만든 곡의 일부를 활용해 자신의 신작을 만들어 팔되 정식 유통은 피하는 셈이다. 전문 공장에 맡길 형편이 안 되면, 조악하지만 가정용 더블덱 카세트로 직접 복사해 제조하기도 한다.

테이프에 다른 이의 음악을 복제하거나 이를 판매할 경우, 법에 저촉되지는 않을까. 판매는 물론이고, 엄밀히 따지고 들면 테이프에 음악을 담는 그 순간의 복제 행위만으로도 법에 저촉된다. 허나 몇몇 지인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는 개인적 소비에 머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저작권 신탁단체 관계자는 “유치원 장기자랑에서 트는 음악에 대해 저작권료를 굳이 거둬가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며 “요즘 권리 침해 단속은 ‘효도 라디오’ 등 불법 USB에 집중하는 편이다. 무상으로 공유하는 소수의 취미라면 여기 적용할 규정이 모호하고 손댈 여력도 없다”고 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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