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기환송…“직권남용 엄격 적용”

  • 뉴시스
  • 입력 2020년 1월 30일 14시 20분


코멘트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박근혜 정부 시절 특정 문화예술인 등에 대한 지원을 배제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직권남용죄에서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오후 특별기일을 열고 김기춘(81)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상고심 선고에서 각각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지난 2018년 1월 2심 선고가 내려진 뒤 대법원 심리를 거쳐 약 2년여 만에 다시 파기환송심이 진행되는 것이다.

김 전 실장 등은 정부 비판 성향의 문화예술인 및 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소위 ‘블랙리스트’를 만들게 하고, 이를 집행하도록 지시·강요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 전 실장과 함께 조윤선·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및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김소영 전 문체비서관 등이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았다.

대법원은 김 전 실장 등이 문체부 공무원을 통해 예술위·영진위·출판진흥원 소속 공무원에게 특정 인사 지원 배제를 지시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모해서 그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지원 배제와 관련해 공무원들에게 각종 명단을 보내게 하고, 사업 과정에서 수시로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 한 것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서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이 그같은 일을 할 법령상 의무가 있는지를 살펴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일반적인 경우 상대방이 따라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직권을 남용해 행위를 하게 했다면 의무 없는 일에 해당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직권남용 행위의 상대방이 공무원이거나 법령에 따라 일정한 공적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공공기관의 임직원 등일 경우에는 의무 없는 일이 어떤 경우에 해당되는지 관계 법령에 따라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원심이 그같은 부분에 대한 심리가 미진했다고 보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또 대법원은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에 대해 퇴임한 이후에는 직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퇴임 후에 이뤄진 범행에 대해서는 공범으로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봤다. 이같은 판단에 따라 퇴임 이후 행위까지 포함해 함께 판단한 원심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고,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1심은 “정치권력에 따라 지원금을 차별해 헌법 등이 보장하는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심각히 침해했다”며 김 전 실장에게 징역 3년을, 조 전 장관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정부와 다른 이념적 성향을 가진 개인이나 단체를 좌파로 규정해 명단 형태로 관리하며 지원을 배제하는 것은 헌법 원칙에 어긋난다”며 김 전 실장에 징역 4년, 조 전 장관에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8년 2월 사건을 접수한 뒤 전원합의체에서 사건 심리를 진행해 왔다. 특히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성립 여부에 대해서 집중적인 검토를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대법원이 그간 적폐 수사 등에서 적용됐던 직권남용죄에 대한 판단 기준을 세우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다. 그간 법조계에서는 형법 123조 직권남용에서 공무원 ‘직권’의 범위 및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점에 대한 해석을 두고 다양한 견해가 제기돼 왔고, 유·무죄 판단을 내림에 있어 하급심에서의 판단이 엇갈린 경우도 있었다.

과거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6년 직권남용죄의 명확성 원칙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합헌 의견을 내렸지만, 소수의견을 통해 ‘공무원의 직권은 내용과 범위가 언제나 법령의 규정을 통해 객관적으로 명확히 확인되는 것으로 볼 수 없어 직권남용의 적용 범위가 사실상 무한정 넓어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