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염식도 맛있게… 콩팥질환자 맞춤밥상 차려드립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행복 나눔]
식품 소셜벤처 ‘잇마플’… 김현지-김슬기 공동대표

헬스케어 스타트업 ‘잇마플’의 공동대표 김현지(오른쪽), 김슬기 씨가 21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성콩팥병 환자들을 위한 식단 ‘맛있저염’을 선보이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헬스케어 스타트업 ‘잇마플’의 공동대표 김현지(오른쪽), 김슬기 씨가 21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성콩팥병 환자들을 위한 식단 ‘맛있저염’을 선보이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아픈 것도 서러운데, 먹는 것조차 마음대로 못 한다.’

만성질환자들이 겪는 고충이다. 건강을 회복하려면 음식을 잘 챙겨 먹어야 하는데, 건강상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당뇨와 콩팥(신장)병을 함께 앓는 환자의 경우 딜레마가 있다. 당뇨 환자는 혈당을 조절하기 위해 흰 쌀밥보다는 잡곡밥을 먹는 게 좋다. 그런데 콩팥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에겐 인과 칼륨이 들어 있는 잡곡밥이 맞지 않는 식단이다. 이처럼 만성질환자들에게는 일상적인 끼니를 챙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소셜벤처가 ‘잇마플’이다. ‘Eats(먹는 것이) my(나의) pleasure(기쁨)’라는 문구를 줄인 이름이다. 이 회사의 대표적인 서비스가 콩팥 환자들에게 맞춤형 저염식 식단을 배송하는 ‘맛있저염’이다. 잇마플의 공동대표 김현지(33) 김슬기 씨(32)를 21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설을 앞두고 마지막 물류 배송에 착오가 없는지 확인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 환자들이 원하는 ‘맛있는 저염식’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무형의 서비스가 유행인 시대에 공장 설립, 각종 규제 등의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식품 소셜벤처’를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김슬기 대표는 “군대를 가려고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콩팥병 진단이 나왔다”며 “그때부터 저염식을 해왔는데 혼자서 음식 성분과 식재료를 고민해 밥을 챙겨 먹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끼고 관련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2016년 KAIST 사회적기업가 MBA 과정에 입학한 그는 정보기술(IT) 업계 출신의 김현지 대표를 만났다. 광고를 전공했던 김현지 대표 역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템으로 창업할 포부를 가지고 이 학교에 입학했다. 김현지 대표는 “같이 수업을 받던 김슬기 대표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저염식’으로 창업을 하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들은 2017년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8평짜리 주방을 얻어 ‘잇마플’을 창업했다.

현재 콩팥 질환자 약 200명이 이용하는 ‘맛있저염’ 서비스는 구독 방식으로 제공된다. 매월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신문을 정기구독하는 것처럼 음식을 배송받는 것이다. 한 끼를 기준으로 당분과 염분 등을 철저하게 지키는 환자식이다. 그런 제약 속에서도 ‘먹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 100가지가 넘는 반찬을 개발했다. 임상영양사 2명과 전문요리사 3명이 조리원들과 함께 음식을 만든다.

○ 콩팥병 속도 1년 늦추면 440억 원 아껴

만성콩팥병 환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4년 15만7500명이던 콩팥병 환자는 2017년 20만3900명으로 늘었다. 병의 진행 단계는 ‘신장 투석 전(1∼5단계)→신장 투석→신장 이식’ 순으로 심각해진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치료비, 삶의 질 저하 등은 모두 사회적 비용으로 쌓인다.

김현지 대표는 “만성콩팥병을 발병 전 상태로 복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식단 조절을 통해 얼마든지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며 “국내 콩팥병 환자 중 1%의 진행 속도를 1년만 늦춰도 사회적 비용이 440억 원 정도 감소된다. ‘잇마플’이 헬스케어 스타트업으로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잇마플은 단순 식단 제공을 넘어 데이터를 결합한 헬스케어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콩팥병 환자의 건강 상태를 관리해 보다 유용한 정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콩팥병 외에 다른 만성질환으로 환자식 범위를 넓힐 계획도 있다. 당장은 갑상샘(선)암 환자용 저요오드 식단을 내놓는 게 목표다.

○ “먹는 기쁨을 돌려주어 감사합니다”

‘창업 초짜’들에게 식품사업이 쉽지만은 않았다. 2017년 잇마플을 세우고 저염식을 막 배송하려던 순간 ‘살충제 계란 파동’이 터졌다. ‘살충제가 신장에 안 좋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사업은 처음부터 좌초 위기를 겪었다. 김현지 대표는 “계획했던 식단에서 계란을 전부 없애고, 계란을 주 원료로 하는 마요네즈까지 채식 마요네즈로 바꿨다”며 “환자식을 담당하는 회사라 식품 관련 이슈엔 언제나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위기를 잘 이겨낸 덕분에 작은 주방에서 시작한 사업은 경기 성남시의 90평대 식품공장으로 이전할 만큼 커졌다.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해썹)도 받았다. 각종 기관으로부터 수억 원에 이르는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환자들의 피드백을 들을 때 사업의 보람을 가장 크게 느낀다. 제한적인 환자식으로 고생하다가 염도와 당분이 조절된 고추장불고기, 고등어조림, 누룽지탕 같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이들이 많다. 환자 가족들도 “아버지 식사 준비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덕분에 많은 짐을 덜게 됐다”며 전화를 걸어온다.

김슬기 대표는 “온라인에 환자식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가 떠돌고,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큰 건강기능식품도 많다”며 “환자들에게 보다 정확한 정보로 영양교육을 하고 ‘먹는 즐거움’을 되찾아주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잇마플#저염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