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한복 많이 입으세요[간호섭의 패션 談談]<31>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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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패션디자이너 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 홍익대 미술대 교수
여러분 우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뜻의 인사는 나라마다 각기 다르지만 “해피 뉴 이어”만큼 널리 쓰이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다소 식상할 수 있는 이 표현에 저는 좀 특별한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바로 ‘뉴’라는 부분에 상대방의 성이나 이름, 애칭을 넣어 본답니다. 제 이름을 예로 들면 “해피 호섭 이어” 또는 웃어른이라 이름을 언급하기 어려울 때는 그분의 애칭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아이디, 직함 등을 넣기도 합니다. 반응은 의외로 뜨겁습니다. 한 사람만을 위한 특별한 수고와 정성도 느껴지고 대접받는 느낌마저 듭니다.

패션도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는 많이 변했습니다. 새 옷을 입는 일은 늘 즐겁지만 나만 간직하고픈 특별한 감정은 많이 사라진 듯합니다. 우선 생산 방식의 변화가 한 요인입니다. 새해 첫 옷인 설빔을 위해 밤새워 바느질하며 옷을 짓는 모습은 사극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직접 바느질을 하지는 않더라도 본인의 사이즈에 맞게 옷을 맞춰 입는 경우도 특별해진 지 오래입니다.

그나마 진정성을 담은 의미의 새해 옷은 대대로 물려받아 온 전통 옷 같습니다. 우리 고유의 전통 옷인 한복만 해도 아직까지는 입는 이의 성별, 역할, 체형과 성품까지 반영해서 옷을 짓습니다. 과거처럼 품계와 직능에 따라 엄격한 규율이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만을 위한 옷 한 벌이 세상에 나옵니다. 색상도 우리 사계절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봄에 피는 진달래와 개나리의 울긋불긋한 색부터 여름 하늘을 닮은 푸르른 쪽빛, 그리고 가을의 농익은 단청 색상, 그리고 겨울 들판의 흰색과 검은색까지 어느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부드럽지만 강하고, 수수하지만 날렵한 한복의 선은 불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조상들이 입는 이를 생각하며 바느질을 하는 사이 배어 나오는 손끝의 진정성이 한복의 선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첫 구절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합니다. 나와 사물의 의미 부여가 있기 전에 꽃은 그저 한 송이 꽃이었던 것처럼 옷 또한 의미가 없는 옷은 천 쪼가리에 불과합니다. 그 의미는 옷을 만들었던 정성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선물했던 마음, 입었을 때 느꼈던 기쁨, 지나온 삶의 기록도 될 수 있습니다.

이름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미를 갖습니다. 한자로 지은 이름이든 순우리말로 지은 이름이든, 그 이름은 지어준 분의 소망과 자라날 아이에 대한 모든 바람을 담고 있죠. 이처럼 제대로 한 벌 지은 한복은 내게 큰 의미를 줍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란 두 번째 구절처럼 매년 새해 한복을 입는 경험을 했으면 합니다. 외국인들의 한복 체험도 좋지만 우리부터 해보면 어떨까요. 여러분 새해 한복(韓服) 많이 입으세요. 그러면 새해 크게 복 받으실 거예요.

간호섭 패션디자이너 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새해#한복#김춘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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