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다른 길로 출근하기[이재국의 우당탕탕]〈31〉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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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연말 송년회에서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친구가 말하길 “내가 좋아하는 외국 디자이너가 있는데, 그분은 매일매일 다른 길로 출근을 한대. 한 번도 안 가본 골목길로 가보거나, 좀 멀리 돌아가더라도 새로운 길로 출근을 하면 하루가 새롭고, 좀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더라.”

이야기를 듣곤 나도 따라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새해를 기다릴 것도 없이 다음 날부터 평소 다니던 길과 조금이라도 다른 길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집을 나오면 무조건 왼쪽 길로 내려가서 큰길이 나오면 그 길을 쭉 걸어서 회사를 갔는데 다음 날부터 바로 왼쪽 길이 아닌 오른쪽 길로 올라갔다. 오늘 첫 번째 골목으로 갔다면 다음 날은 두 번째 골목으로 가고 그렇게 매일 다른 길로 출근을 하고 집에 올 때도 괜히 다른 길로 돌아서 퇴근을 해봤다.

일단, 새로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처음 새 동네에 이사 갔을 때의 설렘도 느껴졌고, 첫 출근 할 때의 떨림 같은 것도 느껴졌다. 매일 같은 길로 출근할 때는 집에서 회사까지 별 생각 없이 걸어갔고, 그날이 그날 같아서 기억에 남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새로운 길로 출근하다 보니 못 봤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물론 매일 새로운 길로 출근하는 건 쉽지 않다. 만약 매일 새로운 길로 출근하는 게 어렵다면 1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출근길을 바꿔보면 좋겠다. 1년만 하면 집에서 회사 가는 길을 50개는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매일 다른 길로 출근하기에 이어서 주말마다 올라가는 남산도 다른 길로 올라가기에 도전해봤다. 지금까지는 남산공원에서 N서울타워로 올라가는 최단코스로 올라가는 걸 즐겼는데 이번에는 남산 둘레길을 이용해 수복천 쪽으로 천천히 올라갔고, 다음 주에는 남산야외식물원 쪽으로 올라가고 그다음 주에는 남산도서관 쪽으로 올라갔다. 그때마다 새로운 나무와 돌, 산길을 만나는 게 좋았다. 같은 길만 걷다가 새로운 길을 걸으니 알 수 없는 새로움이 내 안에 장착되는 것 같아서 창작자로서 뿌듯했다. 하루는 남산을 오르며 ‘부산행’ 대신 ‘남산행’을 생각하며 남산 올라가는 길에 좀비를 만나는 상상을 하고, 최근에 본 ‘백두산’ 폭발 대신 ‘남산’ 폭발을 생각하며 빨리 올라가 남산의 폭발을 막아야 한다는 쓸데없는 스토리를 상상했지만, 그래도 그 상상이 나에겐 도움이 된다. 해외여행을 자주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일상을 여행지로 만들면 된다. 여행이 별건가? 안 가본 곳엘 가고, 안 가본 길을 가고, 평소 잘 안 먹는 걸 먹어보는 게 여행 아닌가? 매일 다른 길로 출근하고, 다른 루트로 남산을 오르면서 느낀 건, 인생에는 길이 많다는 사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의 인생이 마치 정답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 길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답만이 답은 아니다. 정답만 답이면 장사 잘되는 중국집 자장면 맛은 다 똑같아야 한다. 매일 다른 길로 가도 회사에 잘 도착하는 것처럼 인생에는 답이 많다. 일상의 새로움을 좀 더 즐겨 보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출근길#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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