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버린 쓰레기가 다시 태어난다…업사이클링의 세계

김정은기자 입력 2019-12-22 12:22수정 2019-12-2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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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운영하는 아날로그 사진관에서 버려지는 인화지 봉투가 아까워서 가방 만들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두 딸의 엄마이자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김경란 씨(38). 그를 업사이클링(Upcycling) 브랜드 ‘제제상회’의 대표로 변화시킨 건 남편이 운영하는 ‘석주네 사진관’에서 매일 버려지는 인화지 봉투였다.

“인화지를 보관하는 봉투가 겉감은 펄프, 안감은 차광 필름인 폴리에틸렌이 압착 처리돼 있어 분리배출이 어려워요. 그런데 내구성이 정말 좋거든요. 그냥 버려지는 게 아깝기도 하고 특유의 장점을 십분 발휘해 일상생활에 활용 가능한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는 올해 3월부터 인화지를 이용해 가방, 파우치, 필통 등 생활 용품을 제작 판매중이다. 매달 버려지는 인화지의 양 만큼만 제작하다보니 제품은 평균 30~50개 정도 한정 판매된다. 하지만 매달 기다려서라도 경란 씨의 인화지 가방을 사겠다며 대기하는 고객은 수십 명에 달한다. 주문이 늘면서 경란 씨는 남편의 사진관뿐만 아니라 인근의 아날로그 사진관 5곳으로부터 버려지는 인화지를 제공받아 가방으로 재탄생 시킨다.


누군가 버린 쓰레기를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Upcycling)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수막 등을 활용해 가방을 만들어 유명해진 스위스 가방브랜드 ‘프라이탁’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업사이클링을 주도했다면 최근에는 개인 차원에서 사업에 뛰어든다거나 공방 수업 등에 참여하며 생활에서 ‘업사이클링’을 즐기는 모양새다.

주목받는 브랜드 중 하나는 모터싸이클 부품 업사이클링 브랜드 ‘마틸’이다. 마틸에선 폐차된 모터싸이클의 핸드바가 펜꽂이로, 카뷰레터는 촛대로, 밸브 스프링은 명함꽂이로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 마틸의 이정윤 대표(33)는 “모터싸이클 마니아로서 폐차되는 모터싸이클을 다시 활용해 새 생명을 불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하게 됐다”며 “각 부품들이 업사이클링된 뒤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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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로 업사이클링 제품 만들기에 빠진 사람들도 있다. 서울 명동성당 복합문화공간에 위치한 래코드(Re;code)에서는 2014년 10월부터 매 주말마다 최대 8명 규모의 소규모 업사이클링 소품 만들기 ‘리테이블’(Re;table)강의가 열린다. 버려진 카시트 가죽을 이용해 카드지갑, 여권케이스, 안경케이스 등을 만드는 수업을 비롯해 총 60여개 종류의 공방 수업이 번갈아 가며 이어진다. 청바지로 앞치마 만들기 수업에 참여한 문지현 씨(32)는 “공방 수업은 버려진 자원을 활용해 친환경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고 전했다. 리테이블 프로그램의 한란 매니저는 “수강생 대부분이 환경과 핸드메이드 제품에 관심이 많은 경향이 있다”며 “30, 40대 주부들을 비롯해 직장인들의 참여율이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업사이클링이 트렌드로 자리 잡은 데에는 윤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장은 22일 “성장에 가치에 중점을 두며 글로벌 브랜드나 유명브랜드를 선호하는 베이비부머 세대와는 달리 밀레니얼 세대는 친환경적인 문제에 민감하며 윤리적인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며 “소비 주축이 밀레니얼 세대로 넘어가면서 업사이클링과 같은 윤리 가치가 트렌드의 중심이 돼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많은 기업들도 ‘업사이클링’에 주목하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매달 항공기에 실리는 기내지 중 폐기처리된 것을 활용해 여권지갑, 러기지택, 카드지갑을 제작해 크라우딩 펀딩 형태로 판매 중이다. 판매수익금을 기후변화·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식물원 수목 조성 목적으로 식물연구보전기관에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김정은기자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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