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정보 흘려 800억원 ‘꿀꺽’… ‘무자본 M&A’ 세력 주의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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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67곳중 24곳 위법 적발
허위공시-회계분식-부정거래 등 기업 사냥꾼들 단계별 불법
주가 차이 3년새 평균 13.8배… “비상장주 고가취득 기업 의심을”

‘A사가 드디어 바이오 사업에 진출한다.’

주가 조작 전력이 있는 기업 사냥꾼 5명은 최근 인수한 상장회사 A사와 관련해 이러한 허위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 주가는 바로 뛰었고 이들은 보유한 주식을 모두 팔아 수익을 얻었다. 이들이 상장회사 B사를 인수했을 때는 B사의 자회사가 파산 신청을 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실시해 자금을 횡령했다. 작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A, B사에서 빼낸 자금을 갖고 상장사 C, D사도 인수했다. 각각 블록체인 사업과 바이오 사업에 진출한다는 가짜 뉴스를 흘렸다. 마찬가지로 주식이 오르자 이들은 보유 주식 전량을 다 팔았다. 이들이 거머쥔 부당 이득은 약 800억 원에 달했다. 금융당국은 최근 이들을 수사기관에 넘긴 상태다.

이처럼 자기 돈이 아닌 차입 자금으로 상장사를 인수한 뒤 회계 분식이나 부정 거래를 저지른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이 금융 당국에 대거 적발됐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2월부터 무자본 M&A가 의심되는 기업 67곳을 기획 조사한 결과 이 중 35.8%(상장사 24곳)에서 위법 행위가 적발됐다고 18일 밝혔다. 장준경 금감원 부원장보는 “20명가량이 고발됐고 부정 거래로 적발된 5곳의 부당 이득은 1300억 원가량”이라고 말했다.

무자본 M&A는 기업 사냥꾼들이 사채업자나 저축은행 등에서 빌린 돈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말한다. 이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이들은 기업을 인수한 뒤 거액의 회사 자금을 빼내 유용하는 사례가 많다. 인수한 주식을 팔아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등 불공정 거래를 할 가능성도 있다.

기업 사냥꾼들은 ‘상장사 인수’, ‘자금 조달 및 사용’, ‘차익 실현’ 등의 단계별로 여러 가지 위법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우선 상장사 인수 단계에서 기업 사냥꾼은 인수 주식을 사채업자나 저축은행에 담보로 제공하며 돈을 빌려놓고도 이 사실을 감추거나, 빌린 돈을 자기 자본인 것처럼 허위로 신고했다.

자금 조달 및 사용 단계에서 수상한 기업도 많았다. 이번에 적발된 상장사 24곳은 최근 3년간 사모 전환사채(CB) 발행 등을 통해 1조7414억 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 중 비상장 주식 취득, 관계회사 등에 대한 대여 및 선급금 등으로 사용한 자금이 1조829억 원이었다. 기업 사냥꾼들은 비상장 주식을 다른 의도를 갖고 고가로 사들이거나 관계 회사에 몰래 빌려주고도 이를 숨기기 위해 회계자료를 조작한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차익 실현 단계에서는 무자본 M&A 세력이 상장사 인수 뒤 허위 사실을 언론에 흘리거나 작전세력을 동원해 주가를 띄우고 매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장사 24곳은 최근 3년간 주가 최저가와 최고가의 차이가 평균 13.8배에 달했다.

이들 기업은 최대주주도 최근 3년간 평균 3.2회 변경됐다. 최대주주는 재무구조가 열악하고 실체를 알기 어려운 비외감법인이나 투자조합이 82%에 달했다. 금감원은 “정보를 알기 힘든 비외감기업이나 조합 등 실체가 불분명한 기업, 사모 CB를 자주 발행하거나 비상장주식을 고가에 취득하는 기업은 무자본 M&A 세력으로 의심해보고 신중히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무자본 m&a#기업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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