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환경 이야기]‘노 저팬’ 운동처럼… 기후변화 문제도 국민이 주도할 수 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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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7월 서울의 한 마트 진열대에 일본 제품을 팔지 않는다는 표지가 붙어 있다.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를 내리자 이처럼 일본 제품 불매와 여행 자제 등 이른바 ‘노 저팬(NO JAPAN)’ 운동이 시작됐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올 7월 서울의 한 마트 진열대에 일본 제품을 팔지 않는다는 표지가 붙어 있다.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를 내리자 이처럼 일본 제품 불매와 여행 자제 등 이른바 ‘노 저팬(NO JAPAN)’ 운동이 시작됐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최근 일본이 한국에 취하는 규제를 보면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릅니다.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꺾어버리기 위해 시작한 무역 규제가 도리어 일본 기업이나 소규모 관광도시의 상인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이죠. 이들은 최근 아베 정권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대규모 시위가 잦은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는 매우 소극적인 항의로 보입니다. 만일 우리 정부가 아베 정권과 같은 조치를 취해 일부 시민이 피해를 봤다면 불만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왜 이렇게 얌전한 걸까요?

○ 독특한 일본인의 질서의식


일본인들의 질서의식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발생해도 훈련받은 대로 차분하게 질서를 지키며 대응하는 모습은 무서울 정도입니다. 일본인의 이런 태도는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가 사망한 고 이수현 씨의 사례에서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05년 1월 27일 이 씨는 일본의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 전철역에서 술에 취한 일본인이 철로에 떨어지자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습니다. 옆에 있던 일본인 2명도 함께 선로로 내려와 이 씨를 도왔지만 세 남자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마침 금요일 퇴근길이라 200여 명이 현장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개인주의가 강한 일본인들은 생전 모르는 외국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 씨의 용감한 행동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일본인들이 이 씨와 달리 선로에 뛰어들지 못했던 이유를 철저한 질서교육에서 찾았습니다. 일본인들은 어려서부터 철로에 접근하면 엄벌을 받는다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응급상황에서 이들을 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순간적으로 판단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 규제에 순종해 위기를 극복한 일본


하지만 철로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교육을 하지 않는 나라가 있을까요? 일본인들의 철저한 준법의식은 역사적으로 규제를 잘 따랐던 국민성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문명의 붕괴’를 보면 규제에 순종하는 자세로 위기를 극복한 일본의 사례가 소개됩니다. 1467년부터 힘을 잃어가던 일왕은 다이묘(大名)라 불리는 다수의 호족들과 권력 다툼을 벌였습니다. 이 전쟁은 마침내 호족의 대표 격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후계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승리로 그 막을 내렸죠. 1603년 일왕은 도쿠가와에게 쇼군(將軍)이라는 지위를 하사하고 자신은 명목상 지배자로 남았습니다.

이후 긴 평화가 이어지면서 일본에는 경제 위기가 찾아옵니다. 전쟁이 없으니 인구는 늘어 가는데 이를 유지할 자원의 수급은 어려워졌습니다. 오랫동안 통상 수교 거부정책을 고집하면서 비롯된 자급자족 경제구조 탓입니다.

특히 목재의 부족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나무는 연료를 비롯해 집, 공예품, 각종 도구 등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사용됐죠. 1657년에는 수도 에도(현 도쿄)에서 발생한 대화재로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도 절반이 불에 탔습니다. 실패로 끝난 조선 정벌 때에도 많은 나무가 배를 만드는 데 사용됐습니다. 나라 살림에 위기가 찾아오자 쇼군은 나무에 관한 여러 가지 규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본 삼림 4분의 1을 직접 관리했던 쇼군은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별도의 관리를 임명했습니다. 다이묘 250명도 자신의 땅에 있는 삼림 관리를 위해 별도의 담당자를 파견했습니다. 쇼군이나 다이묘들의 통제권에 미치지 못하는 지역의 삼림은 마을 수장이나 마을 사람들이 공동 관리하도록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이 규제를 철저하게 따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목재가 부족한 상황이었던 만큼 규제를 잘 지키지 않는 나라였다면 일부 시민이 숲에 들어가 함부로 벌목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본인들은 평소 숲을 경외하는 마음도 갖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일본인들은 쇼군 시대에 정부의 규제에 순종하는 국민성을 함양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 시민 주도로 환경 위기를 극복하자!

지금 우리는 하나의 국가를 넘어 전 세계적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유엔 산하 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올라가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 온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도가 올랐으니 앞으로 0.5도가 더 오르는 상황만큼은 막아내야 합니다. 인류는 지금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구촌 구성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규제를 잘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규제를 지키는 데는 어떤 방법이 효과적일까요? 과거 일본처럼 정부가 규제를 지시하면 시민들이 이를 따르는 ‘상의하달(上意下達)’ 방식이 좋을까요? 아니면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규제를 만들고 실천하는 ‘하의상달(下意上達)’ 방법이 나을까요?

상의하달 방식은 효과가 즉각적이고 뚜렷합니다. 그러나 지도부가 잘못된 판단을 할 경우 소수의 특권층에만 이득이 되고 대다수는 고통을 받게 될 수도 있죠. 반면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 저팬(No Japan)’ 운동은 하의상달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가 아닌 시민이 주도해 스스로 행동하고 조직화한 운동은 그 효과가 지속적이고 광범위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은 시민이 주도적으로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나라 시민이 주인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학생 때부터 자신이 사는 지역의 정책에 관심을 두고 고민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학습문화가 궁극적으로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하의상달식 운동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수종 서울 신연중 교사
#기후변화#준법의식#시민 주도#환경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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