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를 화나게 하지 마라” 신산업 발목 잡자 여론 반발…해외에서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3일 16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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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등 신규 모빌리티 서비스와 택시업계의 갈등처럼 새로운 산업이나 서비스가 등장할 때 기존 산업과 충돌이 빚어지는 일이 많다. 그 과정에서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은 소수의 이익단체 편에 서기 십상이다. 이는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외에서도 이런 상황은 발생한다. 하지만 대중의 표가 흩어져 있다고 국민의 편익을 저해하는 시도들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비판 여론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고 힘을 얻으면 정치권도 마냥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감기약과 해열진통제, 소화제 같은 가정상비약을 편의점과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도록 한 조치가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2011년 9월 안전성이 검증된 의약품을 편의점 등 약국 이외에서도 팔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약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민들이 한밤중이나 공휴일에 약국을 찾아 헤매지 말게 하자는 취지였다.

당시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반대했다. “간을 손상시키거나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의약품이 무절제하게 판매될 수 있다” “슈퍼에서 의사 처방이 필요 없는 약을 사면 보험 적용이 안 돼 소비자 부담이 커진다”며 아예 개정안에 대한 심의 자체를 거부했다. 국민 건강에 대한 우려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 회원 6만 명을 거느린 대한약사회의 눈치를 보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한국소비자원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71.2%가 찬성하는 등 약사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에게 여론의 비난이 집중되자 해당 의원들은 부랴부랴 2012년 2월 상임위에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고도 동네 약사들의 ‘입소문’이 두려웠던 의원들이 몸을 사린 탓에 개정안의 최종 본회의 통과는 19대 총선 이후인 2012년 5월에 가까스로 이뤄졌다.

미국 뉴욕에서는 차량 공유 서비스업체 ‘우버’에 대한 규제를 시도했다가 시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예도 있다. 2015년 당시 민주당 소속이던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혼잡시간대에 더 비싼 요금을 받는 우버의 횡포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해야 하는 게 시의 임무”라며 우버 차량의 총 대수에 상한선을 두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이에 여론은 크게 반발했다. 악명 높은 뉴욕 맨해튼 택시의 불친절과 질 낮은 서비스를 참을 수 없다며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당시 200만 명이 넘는 뉴욕시 우버 애플리케이션(앱) 가입자들 중 상당수가 반대 서명에 나섰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여긴 같은 당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소비자들에게 편리한 서비스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결국 더블라지오는 우버 차량 대수 제한 방침을 철회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환경과 일자리 보호라는 정치적인 수사로 포장했지만 이익집단을 보호하려는 시도가 패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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