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겨울비에 갇힌 고갱과 고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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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날씨 때문에 집 안에 갇히면 답답함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예상치 못한 갈등과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가장 가깝다고 여겼던 친구나 심지어 가족까지도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같은 공간에서 지내다 보면 익숙지 못한 상황과 낯선 모습에 서로 부딪치며 종종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살면서 폭우에 갇히기도 하고 폭설로 꼼짝달싹 못 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미세먼지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이제 곧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2월인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추위보다 미세먼지 때문에 야외활동이 힘든 겨울을 더욱 걱정하게 됐다.

날씨에 갇힌 상황에서 현명하게 생활하는 지혜를 시사하는 두 가지 대립되는 에피소드가 있다.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적 화가인 고갱과 고흐는 1888년 겨울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 있는 ‘노란집’이라 불린 작업실에서 두 달간 함께 생활한 적이 있다.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창작하고 생활하는 것을 꿈꾸어 왔던 고흐는 평소 존경했던 고갱을 자신의 작업실로 초대했다. 남프랑스 도시 아를은 1년에 300일 이상 태양이 작열하는 곳이었지만 이들이 함께 생활한 11월 초에서 12월 23일 사이에는 무려 20일 넘게 비가 내렸다. 겨울비에 갇힌 이들은 작업실에서 함께 작업에 몰두하면서 서로의 모습을 그려주기도 하고 자화상을 헌정하기도 했지만 점차 서로의 작품에 간섭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특히 계기가 된 것은,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에 대해 고흐가 비난을 퍼부으면서 둘 간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악화됐다. 급기야 고흐는 면도칼로 자신의 왼쪽 귀를 잘라버리는 발작을 일으켰다.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파 시인인 바이런과 셸리는 1816년 여름 스위스 제네바의 ‘디오다티 별장’에서 함께 지냈다. 그해 여름은 겨울 날씨와 같았고 차가운 비가 쉴 새 없이 내려 이들 일행은 별장에 갇히게 된다. 일행에는 바이런의 주치의 존 폴리도리, 셸리의 부인인 메리가 있었는데 바이런은 이들에게 괴기소설을 쓸 것을 제안한다. 이들은 서로에게 간섭하기보다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몰입했다. 고갱과 고흐가 서로를 직접 마주보며 인격의 민낯을 드러냈다면 바이런과 셸리 일행은 각자의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교감하면서 서로의 인성과 감정이 직접 부딪치는 것을 피했다. 으스스한 날씨에 갇혀 이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은 후에 드라큘라 백작, 프랑켄슈타인 등으로 발전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미세먼지가 우울증과 자살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우울증에 작용하는 미세먼지의 의학적 기제는 차치하더라도, 미세먼지로 인해 집 안에 머물며 비롯되는 사람들 간의 갈등 관계에서는 현명한 지혜가 필요한 계절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11일 ‘미세먼지 국민 참여 행동 권고’를 통해 미세먼지가 ‘나쁨 상태’(m³당 36∼75μg)일지라도 정상적인 야외 활동을 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니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정상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폭우#고흐#고갱#인상주의#노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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