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지구 표면적의 6%… 생명이 움트는 신비의 땅, 습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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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주의자/김산하 지음/312쪽·1만9500원·사이언스북스

어릴 적 항상 물이 고여 있던 웅덩이가 갑자기 흙으로 메워진 광경을 본 적이 있다. 학교가 끝나고 귀가하는 길이면 늘 그 속에 떠다니는 것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했다. 살아서 꿈틀대던 공간이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매끄러운 아스팔트와 순식간에 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도시에서 ‘물’이란 성가신 존재다. 어느 순간부터 비가 오면 기쁨보다 귀찮음이 앞서고, 우산을 쓰고 피하기 바쁘다. 도시에서 물은 인간의 존재에 따라 이용되고 치워지는 소비재로 여겨지곤 한다.

표지 그림이 반쯤 물에 잠겨 있는 이 축축한 책은 때로 더럽고 음침하게 여겨지는 습지를 예찬한다. ‘습한 땅’을 뜻하는 습지는 말 그대로 ‘젖은 땅’, 물이면서 동시에 뭍인 곳이다. 흔히 지구가 육지와 바다로 구성돼 있다고 하는데, 그 중간 지대가 바로 습지다. 지구 표면적의 6%를 차지하는 습지는 10만 종에 달하는 생명의 서식지다. 이 습지의 매력을 저자는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다.

주인공은 영상 작품을 만드는 ‘나’. 우연히 듣게 된 팟캐스트 ‘반쯤 잠긴 무대’의 내용이 교차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도시에서 권태로운 삶을 되풀이하던 ‘나’는 부업으로 생태통로에 관한 영상을 만들게 된다. 처음에는 이 일에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했지만, 팟캐스트를 들으며 생태적 감수성을 높이고 이를 창작의 동력으로 삼아 영상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간접적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서서히 습지의 중요성을 설득해간다. ‘각 잡은’ 과학서라면 귀 기울이지 않을 독자를 향한 노력이 눈물겹다. 그 나직한 속삭임을 들으며, 페이지 곳곳에 삽입된 아름다운 습지 사진들을 보다 보면 맨발로 축축한 진흙을 밟아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 바로 아래에 있는 동판저수지는 언젠가 꼭 가볼 생각이다. 마지막 무대에 등장하는 습지에 관한 여러 예술 작품도 인상 깊다. 스스로를 ‘습지주의자’라고 칭할 만한 저자의 ‘덕력’을 느낄 수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습지주의자#김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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