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밥 그리고 누룽지[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67〉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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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냉장고나 세탁기, 청소기가 없던 시절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 하는 일은 부엌에 들어가 장작불을 피우는 것이었다. 가득한 연기 때문에 더 희미해진 전등 밑에서 밥을 하기 시작했다. 쌀을 들고 물이 있는 문밖에 나가 쌀을 대충 저은 후 뽀얀 물이 투명해 보일 때까지 그대로 흐르게 놔두었다. 묵은 쌀 냄새도 문제지만 손바닥으로 비비면 쌀벌레가 쉽게 분리된다. 미처 걸러내지 못한 것들은 밥에 들어가 있었지만 당연시하던 때였다. 무쇠로 만들어진 솥은 무거운 나무뚜껑과 세트로 구성되었고 그날 밥이 얼마나 잘 지어졌는지는 아침상에서 엄마 표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가장 먼저 들어온 가전제품은 밥솥이었다. 미리 준비해 두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전기밥솥은 모든 엄마의 수면 시간을 1시간 더 연장시켜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쌀, 옥수수, 밀은 세계 인구 80%의 주식이고 그중 쌀은 50%를 차지한다. 크게 인디카와 자포니카 두 종이며 총생산량의 80%인 인디카 종은 길이가 길쭉하고 익으면 마른 듯한 느낌으로 안남미라 부른다. 최대 생산지는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 미국이다. 재스민 쌀이나 바스마티 쌀처럼 향을 지닌 종도 있다. 생산량의 15% 미만인 자포니카 종은 한국, 대만, 일본 그리고 이탈리안 리소토와 스패니시 파에야의 재료로 사용된다. 아랍 상인을 통해 건너갔다. 모양새가 통통하고 찰기가 있으며 식어도 맛이 유지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1981년 중국전쟁 고아들이 아버지를 찾아 일본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점심식사로 일본식 도시락을 맛본 후 “찬밥을 얻어먹고 왔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도 우리를 버렸다”고 항의했다. 찬밥과 날것을 먹지 않는 식습관을 잘 몰랐던 행사 관계자들의 실책이었던 것이다. 서양에서는 먹고 남은 밥을 버려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다. 물론 먹다 남은 리소토로 만드는 아란치니나 파에야 팬케이크도 있지만 그들에게 익숙한 남은 빵이나 파스타의 경우와는 크게 대조를 이룬다. 남은 밥을 가장 잘 이용하는 방법은 중국식 볶음밥인 것 같다. 1만 년 전 양쯔강 근처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인디카 종은 재가열했을 경우 바삭하고 씹는 맛과 쉽게 한 알씩 분리돼 또 다른 맛을 준다.

햅쌀이 맛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맛도 떨어지기에 냉장고에 보관할 것을 권장한다. 하지만 일본 북부 농가 지역에서는 빙온 숙성 방식으로 해를 묵히면 쌀의 단맛과 감칠맛을 높일 수 있다는데, 마치 가을무의 저장법과 비슷하다. 스시(초밥) 장인들이 이 묵은쌀을 선호하는 이유는 마른 쌀이 스시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오늘날에도 맛있는 밥을 먹고자 하는 열망은 식당뿐만 아니라 가정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이스터(Meister·쌀 감별사)라 해서 와인 소믈리에처럼 쌀을 취향에 맞춰 조합해 주는 직업도 있다. 25년 전 첫 한국 여행에서 돌솥밥을 먹었던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연기로 하루를 시작하는 엄마의 고뇌가 고소한 냄새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나의 한국 생활이 행복한 이유는 아직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가마솥 누룽지도 크게 한몫을 차지한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누룽지#쌀#밥#햅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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