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은 놀이문화[2030 세상/김지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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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원스토어 웹소설 PD
김지영 원스토어 웹소설 PD
약속이 있어 이른 퇴근 후 택시를 잡아탔다. 이태원 언저리를 지나는데 사람들로 북적였다. 좀비 분장의 무리를 보고서야 핼러윈 전 마지막 금요일이구나 싶었다. 부러움 반 호기심 반 쳐다보고 있는데 택시 기사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남의 나라 명절에 왜 이 난리들인지. 취직 힘들다더니 그렇지도 않은가 봐.”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그 불편함은 비단 택시 기사의 반말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응시하다 입을 뗐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도 남의 나라 명절이에요, 기사님!”

크리스마스도 핼러윈도 ‘남의 나라 명절’이기는 매한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아주 우리 일상 깊숙이에 (그 기원인 종교와는 무관하게) 당연하듯 스며들어 있었던 반면 후자는 최근 일반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크리스마스가 가족, 연인, 이웃 등 관계지향적인 가치를 부각시킨다면 핼러윈은 (최소한 국내에서만큼은) 철저히 개인의 개성 표출과 ‘유희’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그런 핼러윈이 최근에야 환영받게 된 것은 젊은층의 가치관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본디 핼러윈은 ‘만성절’(모든 성인의 축일)이라는 기독교 축일의 전야제로,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리는 켈트인의 전통 축제 ‘사윈’에서 유래한다. 사람들은 악령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 자신들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게끔 분장했고 그것이 오늘날 문화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는 2000년대 초 원어민 강사들이 많은 영어 학원을 시작으로 유치원, 초등학교까지 핼러윈 문화가 퍼졌다. 2000년대에 학교를 다닌 밀레니얼 세대에게 핼러윈이 낯설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전주 금요일을 시작으로 당일인 지난달 31일까지 거리 곳곳은 좀비부터 조커까지 기괴한 복장을 한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특별히 주취와 소란 등으로 이웃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들을 향한 불편한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서양의 명절이거니와 코스튬이라는 형식 자체가 한국적 정서에 맞지 않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지만, 유희를 목적으로 하는 기념일에 대한 거부감도 깔려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핼러윈은 명절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놀이문화’에 가깝다. 놀이의 사전적 정의가 그렇듯 즐거움 자체가 목적이기에 엄청난 대의도 명분도 없다. 그저 재미있게 즐기기 위한 날,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과감한 복장으로 자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날이다.

재미 그 자체가 목적인 행위에 대해 우리 사회는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각종 의무들을 상기시키며 계획이 없거나 철없는 이로 치부해 죄의식마저 부여한다. 하지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기 이전에 ‘어차피 행복하자고 사는 인생’ 아니던가. 가끔은 철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움 그 자체가 목적인 놀이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그 옛날 소꿉놀이, 파워레인저 놀이를 할 때처럼 잊고 있었던 내면의 천진함이 솟아나 행복의 감도가 높아질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다 자란 아이에게도 놀이의 기회를 주는 핼러윈의 대중화가 참 반갑고 고맙다. 법정 스님은 ‘삶의 본질은 놀이’라 말했다. 삶의 본질인 놀이를 회복해 모두가 조금 더 여유롭고 재미있게 사는 사회를 꿈꾼다.

김지영 원스토어 웹소설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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