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본 2030男 “불쌍한 엄마·누나” “과장 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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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0월 25일 15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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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메인 포스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82년생 김지영’ 메인 포스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개봉 전부터 논쟁거리였다. 페미니즘을 다룬 원작 소설이 영화화 된다는 소식에 개봉 전부터 ‘여러모로’ 관심이 뜨거웠다.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나온 반면 일부 여성들은 응원과 지지를 보냈다. 독서 인증샷을 SNS에 올린 연예인들은 뭇매를 맞았고, 어떤 연예인들은 영화를 적극 홍보했다.

개봉 당일 기다렸다는 듯이 상영관을 찾은 20대와 30대 남성과 여성을 만나봤다.
“많이 공감했다” “너무 나간 듯”
남초 커뮤니티에서 활동한다는 서태환 씨(25·가명)는 “영화를 둘러싸고 말이 많아서 직접 판단하려고 봤다”며 “스토리는 재밌으나 중간중간 나오는 극단적인 상황이 불편해 앉아있기 민망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공감은 많이 됐다”며 “모든 장면에 공감한 건 아니지만 여성이 사회에서 받는 부당한 차별을 많이 느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31살 남성 허 모 씨는 “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여성들이 겪은 모든 일을 김지영 혼자 다 겪은 것 같다”며 “대다수 여성은 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책이랑 영화에선 마치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럴 것이라고 한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면 더 공감이 갔을 것이다”라고 아쉬움을 얘기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경영 씨(29)는 “영화의 메시지는 알겠으나 전형적인 침소봉대”라며 “적당하지 않은, 너무 과장되고 증폭된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여성들은 서로 쓴 소리를 못하고 북돋는 게 있는데, (82년생 김지영은) 적당함을 모른 채 북돋는 이야기 같다”고 했다.
성별보다는 개인적 경험에 따라 반응 달라

누나만 셋이 있다는 20대 남성 최승우 씨(26)는 “내가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예쁨을 독차지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달랐다. 아버지는 아들인 나한테만 유독 엄하고 무서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릴 때 모 브랜드 운동복이 유행이었는데, 아버지가 누나들에겐 정품을 사주고 나만 아파트 단지 내에서 파는 가짜를 사주셨다”며 “또 누나들 학교 졸업식은 다 갔는데 내 졸업식에는 한 번도 안 오셨다. 어린 마음에 속상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영화를 감상한 남성들도 모두 다른 생각과 의견을 말했다. 공감을 많이 한 사람도, 적게 하거나 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한편 이날 상영관엔 커플이 많이 보였다. 30대 초반 커플에서 남성은 “누나가 있어서 대체적으로 공감을 많이 했다”고 말한 반면, 여성은 “공감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성별에 따라 공감의 정도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개인의 차이였다.
“‘너보다 힘들다’가 아닌 ‘내가 힘들다’는 메시지”
미혼 여성 유지영 씨(33)는 “영화 초반부는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성차별적 이야기만 모아놓아 것 같아 작위적이었다”라면서도 “그러나 생각해 보니, 영화에서 언급되는 내용의 상당 부분은 내가 직접 경험해본 것이었다”라고 했다.

그는 “80년대생들은 (나처럼)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을 많이 할 것이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힘들다고 한 영화 내용이 누군가의 힘듦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는 게 아니라, 단지 ‘내가 힘들다’의 이야기”라고 평했다.

최근 결혼한 새댁 김은아 씨(31)는 “멀리 갈 것도 없다. 회사 옆자리 워킹맘 선배부터 친언니까지 모두가 82년생 김지영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이 작품을 가지고 페미니스트니 뭐니 언급을 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시대 변화에 따라 성별의 역할기대가 달라지고, 이 작품은 그에 따른 요즘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인데 ‘남녀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남성들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언니가 한 명 있다는 김지나 씨(28)는 “영화를 보며 펑펑 울었다. 어머니가 친정에서도 장녀고, 아버지 집안이 가부장적이라 많이 고생했다”며 “4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언니도 생각났다”고 말했다.

또 “집안 일 다하고 카페 나와서 잠시 쉬는 게 유일한 낙인데 그걸로 ‘맘충’이라고 욕먹는 김지영을 보며 ‘내 미래는 저렇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보다 ‘내 미래도 저렇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영화에선 모든 나쁜 상황이 겹친 것 같지만, 나도 겪어본 일이다. 친척 중 여자가 9명이고 남자가 1명인데 할아버지가 여자들만 일을 시켰다”고 부연했다.
일부 여성 “김지영이 너무 과민반응”
여성들의 이야기도 모두 같진 않았다. 각자가 처해있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감상평은 조금씩 달랐다.

박진주 씨(25)는 “여자로써 살아오면서 김지영이 겪어왔던 바를 경험하기도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면서도 “그렇지만 김지영은 너무 과민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사소하고 평범한 사건들이라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것도 김지영은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성별의 대립으로 풀어나가려 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 박 모 씨는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질감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며 “아버지는 ‘딸바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회사 생활을 하는 입장에서 아직도 영화 속 장면이 나오는지 의문이었다”면서도 “그래도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남성 비판 아닌, 사회를 고발하는 영화
영화는 1982년에 태어나 2019년을 살아가는 김지영(정유미 분)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성의 이야기만을 다뤘다는 이유로 젠더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의 인생을 조명해 남성을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다. 사회를 고발하는 영화다. 영화는 김지영을 통해 여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부당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가해자는 남성이기도 하며 또 여성이기도 하다.

영화 속 할머니와 고모들의 남아선호사상은 극단적인 반면, 어머니는 딸들을 소중하게 아낀다. 또 아들에게만 비싼 것을 사주는 아버지가 있고, 아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남편도 나온다. 성별에 따른 대립이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영화다. 비판의 대상이 남성이 아니라 사회인 셈이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특히 영화에서 지영의 남편 대현(공유 분)이 동료들과 남성 육아휴직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사실상 퇴직이라는 이야기에 동료들은 육아휴직을 거부한다. 여기서 육아가 여성의 몫으로만 돌려지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가해자는 남성이 아니라 사회인 것이다. 남성 또한 여성과 같은 피해자로 등장한다. 이처럼 여성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 남성의 인생을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가족 드라마’ 같은 영화로, ‘성 대결 구도’로 몰고 가는 건 문제가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남성 혐오 영화’라고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영화에서 가장 집중하는 육아는 사회가 책임져주지 못하는 면이 더 크다”라고 말했다.

정 평론가는 “아버지의 남아선호사상도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당시 사회가 담고 있는 생각”이라며 “이 영화를 통해 ‘지금부터는 다르게 행동해보자’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서한길 동아닷컴 기자 stre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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