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학습자를 위한 ‘시끄러운 도서관’… 함께 만들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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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청회 열고 의견수렴
발달장애-경계성 지능 증가 추세… 부자연스러운 행동에 눈총받기 일쑤
“거절당하는 경험 쌓이면 포기 늘어 예산확대보다 꾸준한 정책 절실”
자치구 도서관 6곳 곧 시범운영

“시끄럽게 소리를 내지 않거나 위해를 가하지 않아도 행동이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시선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쏠린 시선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건 아이도 금방 느낄 수 있어요.”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16)을 키우는 곽소영 씨(43·여)는 도서관을 방문하기 힘든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아들은 또래보다 키가 크지만 곽 씨는 “비장애인에게 키가 크다는 건 축복이지만 장애인에겐 아니다”라고 했다. 아동열람실이나 서점 어린이책 코너에서 분홍색 동화책을 집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서울도서관은 11일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강당에서 ‘차별 없는 도서관, 누구나 올 수 있는 도서관’ 공청회를 열고 전문가와 느린 학습자 가족, 도서관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서울시는 곽 씨의 아들 같은 ‘느린 학습자’를 위한 ‘시끄러운 도서관’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은평 송파 마포 등 3개 자치구 도서관 6곳이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공간 조성과 서비스 개선을 준비하고 있다. 느린 학습자는 발달장애나 경계성 지능(지능지수 85 안팎)에 놓인 이들을 말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은 2016년 기준 3만256명이다. 경계성 지능 아이는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학급마다 3명꼴로 추산되며 계속 느는 추세다.

느린 학습자는 도서관에 대한 인식부터 달리했다. 김유리 이화여대 특수교육과 교수가 3개월에 걸쳐 ‘느린 학습자 정보요구 및 도서관 역할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비장애인에게 도서관은 ‘정보를 얻는 곳’이지만 느린 학습자는 ‘(자신이 이용하기 어려운) 신성한 곳’이라고 인지했다.

느린 학습자가 도서관에 발길을 돌리게 되는 이유는 심리적 물리적 이유에서다. 심리적 요인으론 비장애인에 비해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는 느린 학습자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보호자에게 ‘자제시키라’고 요청하는 주변의 비협조적인 태도 등이 꼽힌다. 시설이 낙후된 장애인 열람실과 부족한 느린 학습자용 도서 및 프로그램 등도 물리적 장벽으로 작용한다.

청각·발달장애를 가진 딸(9)이 있는 유연주 씨(33·여)는 “최근 생긴 도서관을 찾았는데 계단에 ‘뛰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이 3단으로 붙어 있었다. 안내문을 보자마자 ‘딸을 데려올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거절당하거나 배제당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장애인과 가족은 포기해야 하는 게 는다”고 말했다.

느린 학습자에게 필요한 도서관은 편하고 자유롭지만 비장애인과 분리되지 않은 공간이다. 김 교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동용 도서관이 아니다. 알록달록한 색이나 만화 캐릭터를 이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며 “장애인은 공공예절과 규칙,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도록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느린 학습자 가족은 정책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곽 씨는 “아들이 도서관에 익숙해졌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예산이 뚝 끊겨 이용하기 어렵게 됐을 때 그 이유를 아들에게 설명할 자신이 없다”며 “급격히 시설이 좋아지거나 늘지 않더라도 꾸준히 확산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서울시#시끄러운 도서관#느린 학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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