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초유의 비정상이 몰고올 분열 갈등 혼란, 누가 감당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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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지 한 달 만이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됐는데도 임명이 강행된 장관급 이상 고위공직자는 22명으로 늘어나 역대 정부의 기록을 벌써 뛰어넘었다. 역대 어느 후보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의혹이 제기된 조 장관을 끝내 임명한 것은 ‘내 뜻대로 밀고 가겠다’는 ‘오기 정치’나 다름없다.

조 장관 임명 강행으로 지난 한 달간보다 더 거세고 긴 후폭풍이 밀려올 것이다. 정치권의 파열음은 더 커져 여야 협치(協治)는 물 건너가고 정국은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장관 해임건의안을 비롯한 조국 퇴진 투쟁을 예고했다. 야당의 국정조사, 특검 요구가 이어지고, 이달 말 시작될 국정감사는 사실상 ‘조국 국감’으로 파행 운영될 것으로 우려된다. 극한 대결 속에 민생입법 처리가 실종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사법개혁도 더 격랑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 주체가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고, 수사 대상이 개혁 주체가 되는 초유의 비정상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어제 “검찰은 검찰 일을 하고, 장관은 장관 일을 하면 된다”고 했지만 이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측면이 있다. 검찰 수사 대상이 검사 인사권을 쥔 수장이 되는 기이한 상황만으로도 검찰의 중립성은 훼손되고 외압 시비가 거세질 수밖에 없다. 검찰 개혁 논의도 검경수사권 조정 등 구체적인 내용을 놓고 토론과 협상이 진행되는 대신 ‘개혁 대(對) 저항’ ‘검찰 장악’ 등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갈등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대립과 논란으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 집권세력과 검찰이라는 양대 권력집단이 힘겨루기를 하며 갈등하면 국정 파행과 국론 분열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 임명에 대해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역대 인사청문회는 위법 여부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후보자의 해명이나 행적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을 경우 낙마한 것이다. 조 장관 일가를 둘러싼 온갖 의혹은 상당 부분 검찰 수사 대상이 됐고, 조 장관 부인은 사문서 위조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검찰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고 철저하게 끝까지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검찰의 명운은 청와대나 법무장관이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 달려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 달간 온 나라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은 조국 사태는 공정과 정의의 가치가 뒤틀린 위선의 정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고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자산은 밑바닥을 드러냈다. 그러지 않아도 외교 안보 경제 모두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찢어지고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달래고 치유하기는커녕 조국 임명을 강행해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켰다. 문 대통령의 어제 결정은 이 정권의 도덕적 가치와 기반을 뿌리부터 훼손하고 나라를 더 깊은 분열의 수렁으로 빠뜨린 패착으로 기록될 것이다.
#조국#법무부 장관#임명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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