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형물 암 공포에 가슴 졸이는 여성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엘러간 제품 희귀암’ 공포 확산… 강남 성형외과 재수술 예약 급증
제거 범위 등 정보 부족해 혼란
전문가 “희귀암 발병 매우 드물어… 증상 없다면 재수술 권장안해”


“결혼 전 철없을 때 가슴 확대 수술을 받았는데 최근 남편에게 울면서 처음 고백했다. 빨리 제거 수술을 해야 한다고….”(37세 여성 A 씨)

A 씨는 미국 ‘엘러간’사의 거친 표면 유방 보형물을 이식한 40대 한국 여성이 희귀암(역형성 대세포 림프종)에 걸렸다는 기사를 보고 최근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A 씨도 7년 전 신체적 콤플렉스를 극복하겠다는 생각에 같은 제품으로 이식 수술을 받았다. 혼자 끙끙 앓던 그는 결국 가족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최근 가슴 확대 수술을 받은 여성들 사이에서 ‘엘러간 보형물 희귀암’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서울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 병원들은 초음파 검진과 재수술 예약이 몰려 추석 이후에야 상담이 가능하다. 여성들이 수술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지 않아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사태가 심각하다.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 원장 B 씨는 2일 “‘엘러간 희귀암’ 이야기가 괴담 수준으로 퍼지면서 하루 종일 병원 전화가 불나는 상황”이라며 “재수술 날짜를 잡아달라는 환자가 많아 지금은 10월 이후에야 수술 날짜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슴 전문 성형외과 원장 C 씨는 “흥분한 환자들이 병원에 와서 ‘상담실장보다 원장부터 보겠다’고 한다”며 “엘러간을 고소하겠다며 수술확인서를 써달라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엘러간 보형물로 수술 받은 여성들은 병원을 찾아 해당 보형물의 모델명, 시리얼번호가 적힌 카드를 달라고 하거나 문의하고 있다. 해당 병원이 문을 닫았다면 보건소에 문의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진다. 여성 D 씨(35)는 “어떤 제품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병원에 물어보려고 했더니 폐업했다는 사실을 알고 더 불안해졌다. 정부가 보형물을 이식자 중심으로 추적 관리해 왔다면 이런 불안한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여성이 모인 인터넷 ‘엘러간 피해자 집단소송 카페’ 회원은 이날 현재 4400명이 넘었고 올라온 글만 약 2000건이다. 회원들은 이곳에서 제거 수술 같은 정보를 공유하면서 엘러간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엘러간 사태의 대책을 촉구하는 청원이 올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엘러간 보형물을 이식받은 환자들에게 안전성 정보를 제공하고 부작용은 추적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공포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여성들은 “충분치 않은 대책”이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보형물 제거 수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보형물 제거 비용은 350만 원, 보형물을 신체 내부에서 격리시키기 위해 생성된 피막까지 제거하려면 여기에 50만∼150만 원이 추가되는 식이다. 다른 보형물로 교체하는 재수술의 경우 800만 원까지 수술비를 청구하는 병원도 적지 않다.

피해 여성들은 “병원에 가도 의사마다 말이 다르고 설명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피막은 제거해야만 하는지, 절개 방식은 어때야 하는지 등에 대한 진단도 각각 달라 더 혼란스럽다는 얘기다. 식약처 관계자는 “예방 차원의 제거 수술에 대해 전 세계 기준이 없어 대한성형외과학회와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엘러간 보형물을 이식받아도 희귀암 발병 확률은 낮기 때문에 섣불리 제거 수술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권고한다.

미국식품의약국(FDA)과 식약처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한 재수술은 권장하지 않고 있다. 이상달 MD병원 가슴성형센터 원장은 “자신이 걸릴 수 있는 질환에 무관심할 수는 없겠지만 유방암이 여성 15명 가운데 1명꼴로 나타나는 반면 해당 희귀암은 3200명 중 1명이 발병할 정도”라며 “증상이 뚜렷해 조기 발견이 어렵지 않고, 발병해도 조기에 발견해 보형물과 피막만 제거하면 대부분 치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엘러간#유방 보형물#희귀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