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거칠어져 나타난 벤다 “잘 못하던 욕도 절로 술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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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비너스 인 퍼’ 초연 이어 두번째 주연 이경미

이경미 배우는 “그날그날 무대에 올라 모든 걸 쏟아내고 다시 회복하는 제
모습이 하루살이 같다”며 웃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이경미 배우는 “그날그날 무대에 올라 모든 걸 쏟아내고 다시 회복하는 제 모습이 하루살이 같다”며 웃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더 거칠게 돌아왔습니다. 배역 때문인지 평소에 잘 못하던 욕이 저절로 나오던데요.”

‘갑’을 도발하는 ‘을’, 남성을 압도하는 당돌한 여성. 권력관계 전복의 묘미를 보여주는 연극 ‘비너스 인 퍼’가 더 짜릿하고 영악하게 돌아왔다. 작품 속 압도와 전복의 주체는 여성 ‘벤다’다. 2017년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벤다를 맡은 배우 이경미(29)를 1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초연 때보다 대사와 행동을 더 강하게 하고 싶어 거친 면모를 최대치로 끌어냈다. 거침없는 성격은 벤다와 비슷한 편인데, 작품을 맡고 제 일상 행동까지 더 거칠어진 것 같다”며 웃었다.

‘비너스 인 퍼’는 오스트리아 출신 자허마조흐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각색한 2인극이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성적 만족감을 느끼는 ‘마조히즘’은 자허마조흐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배우 벤다는 오디션장에 나타나 연출가 ‘토마스’에게 “이 배역 꼭 해야겠습니다”라며 들이댄다. 여느 지원자와 다른 당돌함에 놀란 토마스는 여전히 ‘심리적 우월감’을 느끼지만 대화가 계속되며 권력의 중심축은 묘하게 벤다로 옮겨간다.

이경미는 처음 대본을 본 순간을 떠올리며 “연극에 이런 독보적, 영웅적 여성 배역이 있어 놀랐고, 그 대본이 내게 왔다는 사실에 감격해 펑펑 울었다”고 털어놨다.

극을 맛깔나게 살리는 건 이경미의 ‘칼 딕션’이다. 무대를 쩌렁쩌렁 울리는 발성과 정확한 발음 때문에 김민정 연출과 팬들이 붙인 별명이다. “수위가 높은 대사도 무표정으로 똑 부러지게 발음하니 제작진, 관객이 재밌어하시는 것 같다”며 웃었다.

벤다는 무대 퇴장 없이 100분을 꽉 채울 만큼 대사 양이 많다. 이경미는 “실은 대사 양보다도 치명적 매력을 드러내며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상대역과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 같은 긴장감 때문에 요즘 호흡이 망가져 대사를 건너뛰는 악몽을 가끔 꾼다고 한다.

10년 가까이 배우로 살아온 그에게 연기관을 묻자 “어휴, 감히 제가 무슨…. 배우는 배우는 직업”이라며 자세를 낮췄다. 그래도 그녀에게 철칙은 있다.

“항상 무대에서 눈으로 말하고, 상대 눈을 바라보려고 해요. 진짜 눈에서 진짜 인물과 감정을 마주할 때 느끼는 짜릿함 때문에 무대를 떠나지 못하나 봅니다.”

18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4만5000·5만5000원. 16세 이상.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배우 이경미#비너스 인 퍼#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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