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기억하는 불운한 남자 그의 능력이 저주가 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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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른: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데이비드 발다치 지음·김지선 옮김/576쪽·1만4800원·북로드

에이머스 데커. 2m 가까운 거구. 한때는 잘나가는 형사였다. 한데 ‘악마’에게 아내와 딸을 잃은 뒤 추락. 노숙자로 전전하다 끝내 복수에 성공했다. 덕분에 FBI 특수수사팀에 합류. 쉼 없이 범죄와 싸워 왔다.

그런 그가 펜실베이니아주 배런빌이란 소도시에 온 건 나름 휴가였다. 갈 곳 없던 데커를 동료인 알렉스 재미슨이 언니네로 데려갔다. 여전히 쉴 줄 모르고 머리엔 일 생각만 가득하던 그때. 아니나 다를까. 바로 옆집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건, 처음도 끝도 아니었다.

‘폴른…’은 2016년 국내에 선보인 소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시리즈 4편이다. 변호사 출신인 저자가 만든 ‘풍운아’ 데커가 중심인물. 이 시리즈는 3권까지 세계에서 약 1억3000만 부가 판매됐다. 국내에선 10만 권 이상 나갔다.

이 작품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주인공 데커다. 프로미식축구 선수였으나 첫 게임에서 머리를 다치며 은퇴한 불운한 사내. 그 대신 한 번만 보면 모든 걸 기억하는 ‘과잉기억증후군’이란 선물(?)을 얻는다. 물론 이건 극악한 형벌이기도 하다. 범죄수사엔 너무나 쓸모 많은 재능이지만, 가족 살해현장이 24시간 사진처럼 눈앞에 떠오르니까.

“데커는 누가 자신의 가족을 앗아갔는지 알아냈고, 살인자는 결국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이는 데커가 치렀던 대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숨을 내쉬는 마지막 순간까지 치러야 할 대가.”

데커는 외양이나 재능은 다 가진 듯 보이지만, 실은 구멍이 숭숭 뚫린 심장을 가진 이다. 아마도 저자는 이 독특한 주인공에게서 현대사회를 비춰 보려는 게 아닐까. 물질도 정보도 풍요롭지만, 공허하기 짝이 없는. 게다가 ‘폴른…’의 배경인 배런빌을 포함해 이 시리즈엔 미국의 퇴락한 도시들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榮華)의 잔상은 그대로 남았으되 속에선 대책 없이 곪아가는 세상. 시리즈 책 표지처럼 ‘푸른 어둠’만이 하염없이 깔려 있다.

행여나 과한 의미 부여가 오해를 불러일으키진 말자. 이 책은 재밌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도 “발다치 소설 가운데 최고”라고 했단다. 솔직히 그 양반 의견에 100% 동의하진 않지만, 쫄깃쫄깃한 건 틀림없다. 주인공한테 휴가조차 배려하지 않는 저자는 독자에게도 눈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데커를 슈퍼히어로로 만들어준, 모든 걸 기억하는 능력이 이번 작품에서 새로운 양상을 마주한다.

물론 우리는 안다. 이 시리즈가 여기서 끝일 리 없다. 어차피 데커는 또다시 범죄를 해결하겠지. 한데 언제는 그걸 몰라서 범죄소설을 읽었나. 갈수록 무더워지는 여름, 이만큼 빠져드는 작품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다. 다만 혹시 모르니, 문단속은 잘한 뒤 읽으시길. 범인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폴른#저주받은 자들의 도시#데이비드 발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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