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정부 도덕 만능-前정권 법치과잉, 모두 패착”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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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와 횡단의 정치사상’ 출간 서강대 정외과 강정인 교수

강정인 서강대 교수는 “학생들이 윗사람 말을 억지로 듣기만 할 뿐 남의 말과 반대 의견을 자발적으로 들어본 경험이 없다”며 “민주주의에 투자하지 않고 좋은 민주주의 체제를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다양한 민주주의 제도를 경험하고 대화와 토론하는 훈련을 하도록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강정인 서강대 교수는 “학생들이 윗사람 말을 억지로 듣기만 할 뿐 남의 말과 반대 의견을 자발적으로 들어본 경험이 없다”며 “민주주의에 투자하지 않고 좋은 민주주의 체제를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다양한 민주주의 제도를 경험하고 대화와 토론하는 훈련을 하도록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동서양을 막론하고 건강한 공동체는 덕치와 법치가 균형을 이룬다.”

정치사상 연구에서 서구 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온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65)가 논문을 묶은 책 ‘교차와 횡단의 정치사상’(까치·3만 원)을 최근 출간했다. 정년퇴임(내년 2월)하기 전 마지막으로 출간한 책이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고귀한 인물의 출현이 공화국의 건강을 유지한다고 했다. 정치적, 도덕적으로 빼어난 인물이 나타나면 선한 사람은 그를 본받고자 하고 악한 사람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법치를 강조한 현실주의자이지만 정치적, 도덕적으로 뛰어난 인물의 모범적 행동을 통한 교화, 곧 덕치 역시 중요하게 봤다.”

전통 정치사상의 현대화, 서양 정치사상의 한국화, 비교정치사상 연구를 해 온 강 교수를 11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나 ‘건강한 공화국’에 관해 들어 봤다.

―한국 정치 문화에 성리학의 유산이 적지 않은데….

“서양 정치사상은 마이클 왈저(미국의 정치철학자)가 말한 ‘더러운 손의 정치’를 비롯해 정치가 마주하는 도덕적 딜레마를 진지하게 다뤄왔다. 하지만 주자학은 너무 도덕적 순수주의, 엄숙주의를 주장해 이 측면에 대한 고찰이 별로 없다. 조선왕조실록을 봐도 정책 평가보다 공직자의 도덕성 논쟁이 많다. 정치가 어느 정도 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게 오히려 위선과 트집 잡기 식 다툼을 막을 수 있다.”

―‘법치와 덕치’ 시각에서 현 정권을 평가해 달라.

“도덕성 만능주의로 모든 걸 묻어버리고 있다. 인사만 해도 독재 정권은 인망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해 정당성의 결손을 메우려고 노력했다. 한데 현 정권은 스스로 민주적 정당성이 있다고 자부하고 ‘출범을 위해 도운 게 뭐냐’를 가지고 나눠 먹기 인사를 한다. 그러다 보니 인재 등용의 폭이 좁아진다.”

―이전 정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법치의 과잉으로 법망만 피하면 잘못이 없다는 식의 생각을 키우는 역효과를 냈다. 전 정권의 청와대 핵심들이 그 예다. 죄를 지으면 반성을 해야지, 어떻게 빠져나갈지만 고민한다. 도덕불감증이 만연해 있다. 준법정신은 법치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다. 결국 덕치와 법치의 조화가 필요하다.”

―양극적 정치 구도가 굳어졌다.

“보수, 진보가 수면 위에서는 토끼처럼 귀가 서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래서는 서로 껴안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갑질’하는 것이나 접대 받는 문화도 마찬가지다. 그런 블랙홀에 몸담다 보면 보수나 진보나 개혁을 제대로 못 한다.”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보수, 진보가 서로 현대사에서 기여한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진보 진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에 대한 공을 인정해야 한다. 박정희의 인권 탄압을 누가 모르나. 그러나 경제발전이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토대를 깔았다는 생각도 필요하다. 보수 진영은 진보가 민주화에 기여한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막말이나 한다. 양자 모두 박정희 정권 때부터 이어지는 극렬한 대립의식이 지속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과거 NL(민족해방) 계열 출신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자꾸 친북 쪽으로 가는 인상을 주는데, 국민 정서를 생각해야 한다.”

―정치 구도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비례대표제 강화다. 지금은 중도표가 사표(死票)가 되니까. 또 하나 경계할 것은 ‘정치의 연예화’, 예를 들어 대통령이 팬덤의 영향을 받는 거다. 대통령이 ‘피와 땀과 눈물’을 강조하면서 인상을 팍 써야 할 때도 있는데 팬 눈치 보며 연예인처럼 행동하면 되겠나.”

강 교수는 1993년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했다는 건 잘못된 해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독재 정권이 이를 빌미로 법을 악용해 왔음을 비판했다. 북한 체제에 대한 진보학계의 ‘내재적 접근법’ 역시 비판했다.

―학문적으로 보수, 진보 양쪽을 다 비판한 셈이다.

“보수 법학계나 정치권에서는 ‘악법도 법이다’가 마치 상식처럼 돼 있었지만, 사실 거짓이라는 걸 밝혔다. 글을 썼을 때 동아일보가 제일 먼저 기사로 다뤘다. 진보 학자들이 북한 연구 방법에 내재적 접근법을 지지하는데, 내 결론은 ‘북한 체제 옹호로 귀결되기에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였다.”

―내재적 접근론을 주장한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을 때는 그를 옹호했는데….

“학문적으로는 공감이 안 가지만, 그래도 학문과 정치적 자유의 발전을 위해서는 옹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적 민주주의’가 필요한가.

“민주주의도 역사에 따라 영미식도 있고 북유럽식도 있다. 우리도 우리식의 명품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다. 일본과 비교하면 정권 교체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점도 장점이다. 일본은 파벌이 고착화돼 집권세력이 잘못을 해도 교체가 안 되고 철저히 징계하지 못한 채 그냥 넘어간다. 이명박,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누군가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이 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은 강한 응집력과 공동체 의식이 역동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촛불집회가 이를 분명히 보여줬다. 그렇지만 당장은 현 정권도, 이전 정권도 죽을 쒀 놓아서 한국식 민주주의의 장점이 잘 안 보인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교차와 횡단의 정치사상#강정인 서강대 교수#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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