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떴던 감독들 조심해야” 히트 드라마 이후 ‘망작’이 나오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7일 2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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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떴던 감독들의 후속작을 조심해야 돼요. 잘못하다가는 크게 물릴 수 있어요.” 영화와 드라마에 다년간 투자했던 업계 관계자의 이야기다. 두세 달 전에 그와 나눴던 대화 중에 유독 이 부분이 뇌리에 남았다. 자칫 감독 본인의 생각은 다를 수 있어 구체적인 작품과 감독의 이름을 밝히진 않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한때, 심지어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잘 나갔던 분들의 실패담이 이어지고 있다. 감독만이 아니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꽃은 피었다 지는 법. 어찌 보면 성공 후 실패가 따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을 조금 더 뜯어본다면, 의외의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실패의 원인을 뒤집으면 성공의 비결이 될 테니까 말이다.

대중예술에서 성공 후 실패 사례가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 즉 일종의 ‘전능감(全能感)’이 생기기 때문이다. 심하면 안하무인이 된다. 심리학자들은 “성공으로 인해 권력이 생기면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쉽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대중예술에선 문자 그대로 대중의 공감이 성공의 기본 요소다. ‘내가 이걸 이렇게 만들면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계속 생각하며 만들어야 한다. 공감능력이 떨어진 사람이 대중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자연히 실패로 가는 길이 훤하게 열리게 된다. 여기에다 성공에 도취해 스태프들을 무시하거나 마구 다루기까지 하면 결과가 뻔하다. 영화나 드라마는 집단 창작품이다. 제작 과정에서 잡음이 나온 작품 치고 괜찮은 평가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명기 정신과 전문의에 따르면 인간이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데에는 두 가지 동인이 작용한다. 바로 동정심(공감능력)과 공포다. 동정심 또는 공감능력이 있는 이들은 지위가 높아지거나 권력을 손에 잡더라도 타인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인다. 반면 두려움 때문에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은 힘이 생기면 바로 안면을 바꾼다. 이들은 결국 독선에 빠져 자기 무덤을 파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작은 성공에 만족하고 안주하기도 한다. 그것이 전부인 줄 안다. 이런 태도는 과거의 영광과 지식으로 현재를 살아가려는 태도를 낳는다. ‘내가 왕년에 말이야’란 식으로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사람을 요즘 젊은이들은 ‘꼰대’라고 부른다.

지금 방송가에서는 옛날에 잘 나갔던 PD, 작가님들의 작품이 ‘꽂아줄 채널’을 찾지 못해 헤매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혹시나 싶어 1회차 영상을 보면 딱 20~30년 전 그 스타일이다. 화면구도와 대사, 스토리 전개까지 다 ‘복고풍’이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런 성공을 함정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원인만큼이나 해결책도 뻔하다.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객관성 내지는 제정신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쉽지만 아무나 못한다는 게 문제이긴 하다.

‘쇼생크 탈출’, ‘미저리’, ‘그린마일’을 쓴 스티븐 킹은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한명이다. 그의 책은 무려 3억5000만 부가 팔렸다. 킹은 자수성가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두 살 무렵 아버지가 “담배 사러 나간다”며 가정을 버리고 떠난 후 가난 속에서 자랐다. 대학 졸업 후에는 직업을 구하지 못해 자신은 세탁공장에서, 아내는 도넛가게에서 일했다. 그의 자서전 격인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어보면 생각지 못했던 원고료를 받았을 때 얼마나 감격했는지를 떠올리는 대목이 나온다. 킹이 성공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던 이유는 끊임없이 타인의 의견을 들으며 객관적인 ‘품질 관리’를 해 나갔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 태비사는 ‘제1독자’로서 작품에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킹은 또 초고가 완성되면 항상 4~8명의 지인들에게 원고를 보내 의견을 들었다.

원명 교체기의 난세에 씌어진 ‘욱리자(郁離子)’에는 ‘소인배들은 화와 복이 서로 기대며 그 안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요행이 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이유다. 실의(失意)는 득의(得意)한 데서 비롯된다’는 대목이 있다. 작은 성공에 도취되거나, 자기 잘난 맛에 취하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

문권모 채널A 콘텐츠편성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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