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예고편을 잘 읽어야 한다

정연욱 논설위원 입력 2019-05-14 03:00수정 2019-05-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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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의 경고, 지속적으로 발신… 시그널을 못 읽으면 미래 없어
정연욱 논설위원
원내 사령탑을 뽑는 원내대표 경선은 예측이 쉽지 않은 대표적 선거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의원들을 상대로 벌이는 득표전이기 때문이다. 그 흔한 여론조사를 하기도 어렵다. 그만큼 의원들의 흉중은 가늠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 선택은 민심의 풍향계라 할 만큼 절묘했다.

8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청와대는 친문 핵심인 김태년 선출에 베팅을 했다. 집권 2년이 됐지만 여전히 청와대의 장악력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전망이었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비주류 이인영이 상당한 표차(76 대 49)로 이겼다. 청와대와 친문 주류의 독주에 경고장을 보낸 다수 의원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이다.

내년 총선에 출사표를 낼 청와대 출신이 40∼50명이나 되고, 이들이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당 접수에 나설 거라는 소문에 의원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집권 2년이 되도록 뚜렷한 ‘업적’이 없는데도 적폐청산, 소득주도성장 등 정책기조를 고수하는 청와대에 대한 불만도 확산됐다. 청와대의 독주에 ‘민주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라는 자조 섞인 평가가 팽배했다. 이러는 동안 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정당 지지율이 오차한계 범위 내로 들어섰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불과 2년 만에 문재인 정부의 국정 동력인 ‘탄핵의 기억’이 허물어지는 듯했다. 이 국면을 보는 당청 지도부와 의원들의 생각은 평행선을 달렸고, 결국 다수 의원은 친문 핵심 카드를 거부한 것이다.


2006년 1월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원내대표 경선도 비슷했다. 집권 4년 차를 맞아 대통령 지지율은 급락하고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는 상황이었다. 그 반작용으로 친노가 아닌 김한길이 원내 사령탑을 맡았고, 당청은 정면충돌했다. 청와대가 법무부 장관 문재인 임명을 밀어붙이자 여당이 공개 반발하면서 청와대가 인사를 철회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듬해 김한길은 열린우리당 해체의 선봉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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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여당이었던 시절에도 원내대표 경선은 정국의 분수령이었다. 집권 중반을 맞아 권력의 균형추가 흔들리는 시점이었다.

2011년 5월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은 황우여 안경률 이병석 3자 대결로 시작됐다. 친이계 투톱인 이상득과 이재오가 손을 잡고 안경률 단일후보로 정리되는 듯했지만 친이계 단일화는 막판에 무산됐다. 3파전으로 표가 분산되자 친박 황우여가 당선됐다. 친이계의 분열은 대선후보 박근혜가 굳어지는 신호탄이었다.

박근혜 정부 3년 차인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은 주류 친박계와 거리를 뒀던 유승민을 수면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공무원연금법 등 주요 정책 방향을 둘러싼 청와대와 유승민의 갈등은 계속됐고, 결국 유승민은 조기 퇴진해야 했다. 2011년 원내대표 경선 때 불거진 친이계 갈등은 안정적으로 관리됐고 이듬해 정권 재창출로 이어졌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와 원내대표 간 갈등의 불씨는 공천 파동으로 튀었고, 대통령 탄핵-파면까지 이어졌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다. 큰 사고는 한순간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수많은 징후를 발신한다는 경험칙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해를 넘길수록 권력의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강해진다. 오죽하면 청와대 정책실장이 “집권 2년이 벌써 4년 같다”고 하소연을 했을까. 민심의 경고음이 나오는데도 청와대는 여전히 자기반성과 성찰 없이 관료 탓, 야당 탓으로 일관한다. 정책성과를 내야 할 시기는 달라야 한다. 이런저런 변명만으로 넘어갈 수는 없다. 예고편에 깔린 메시지를 읽어내고 변하는 것은 당사자의 몫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이인영#적폐청산#소득주도성장#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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