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다”…일상의 기적을 만드는 ‘NEVER GIVE UP’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9일 17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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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기자
이승건 기자
승리를 확인한 거구의 남자는 무릎이 깨질듯 털썩 꿇어앉았다. 기도하는 것처럼 두 손을 모으더니 이내 얼굴을 감싼 채 오열했다. 패배한 선수들 일부도 그라운드에 엎드려 흐느꼈다. ‘극장(劇場) 승부’가 만든,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장면이었다.

손흥민의 토트넘(잉글랜드)이 출전하고 있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 믿기 어려운 드라마가 잇달아 만들어지고 있다. 토트넘은 9일 적지에서 열린 아약스(네덜란드)와의 4강 최종 2차전에서 전반에만 2골을 뺏기고도 후반에 3골을 넣었다. 주어진 추가시간 5분마저 다 지났을 무렵에 기적 같은 결승골이 터졌다.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는 선수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토트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모습이 오묘한 조화를 이뤘다. 창단 137년 된 토트넘을 처음 ‘꿈의 무대’ 결승까지 이끈 포체티노 감독은 “축구가 아니면 이런 감정을 느끼기 어렵다. 축구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쉽게 볼 수 없는 드라마는 전날에도 있었다. 1차전에서 0-3으로 완패한 탓에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예상했던 리버풀(잉글랜드)은 안방에서 열린 2차전에서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가 버티고 있는 FC바르셀로나(스페인)를 4-0으로 제압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열광의 도가니로 바뀐 ‘안필드’ 관중석에서 대역전극을 지켜 본 사람 들 중에는 이번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이 팀의 모하메드 살라흐도 있었다. 지난 주말 EPL에서 당한 부상 탓에 뇌진탕 증세를 보여 출전 명단에서 빠진 살라흐는 경기가 끝난 뒤 그라운드로 내려와 선수들과 부둥켜안았다. 그가 입은 검은 티셔츠에 흰 글자로 선명하게 새겨진 문구는 ‘NEVER GIVE UP’(절대 포기하지 마) 이었다. 영국의 ‘데일리 메일’은 “정말 영리한 메시지였다. 리버풀이 경기를 뒤집는 힘을 주기에 충분했다”고 전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의 정수(精髓)다. 야구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포수였던 요기 베라가 남긴 “끝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다”도 같은 맥락이다. 토트넘도 리버풀도 마지막까지 죽을힘을 다한 덕분에 “이미 끝났다”고 했던 승부를 뒤집었고, 쉽게 잊지 못할 감동을 남겼다.

선수들은 승리를 갈망하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땀을 짜낸다. 우리는 그렇게 빚어진 기적을 보며 때로 반복되고 보잘것없이 느껴지는 비루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역시 기적을 만드는 것은 똑같이 ‘NEVER GIVE UP’을 품은 정신일 것이다.

포기하지 않았기에 서로 만나게 된 토트넘과 리버풀은 다음 달 2일 운명의 단판승부를 벌인다. 불굴의 정신들이 모여 치르는 ‘기적의 결승전’이다. 팬들은 그 뜨거움을 기다리고 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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