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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타인의 불행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겉은 아름다워도 역겨운 악취만…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2019-05-05 19:17업데이트 2019-05-05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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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불행한 자들의 눈에서 무수히 많은 달빛을 보았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포르투갈 가수·1920∼1999)

애인이 탐욕스런 부자에게 몸을 팔고, 친구가 약속을 저버리고, 가족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불행한 존재인지 느끼게 된다. 나는 리스본에서 파두(포르투갈 민요) ‘뿌리’를 들으며 깊은 상념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독일의 평론가 발터 벤야민이 거리의 현수막에서 ‘기민한 언어’를 발견했듯이, 통속적으로 들리는 노래의 가사에서 보편적 언어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불행한 사람들의 눈을 보며, 자신의 현재 상태를 깨닫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어떤 이는 타인의 불행을 외면하며 살아간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 루치아’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지만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죽음은 무시한다. 사악한 재벌 3세가 사는 미슐랭 식당의 밥을 얻어먹고 공짜골프와 해외여행 접대는 즐기지만 가난한 청년의 고통은 ‘그들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차갑게 비난한다.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인터넷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현대인이 고독해지는 현상을 지적했다. 사교모임은 인터페이스에 불과하고, 우월감과 아름다움의 환상만 남고, 타인은 이용하다가 버린다. 결국 쇼핑, 관광, 미식, 학력세탁, 성형수술, 피부관리를 통한 나르시스틱 쾌락만 남는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고 말하고 스피노자는 인간에게 욕망을 사랑할 자유를 부여했지만 이기적 인간이 되라고 가르친 건 아니다.

데이비드 흄은 도덕의 기초는 동정심이라고 말하고,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공감이 없다면 사회 자체가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쿄의 전철역에서 남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고려대생 고 이수현 씨, 민주주의를 위해 감옥에 갔던 젊은이들, 가난한 사람을 도우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될 것이다. 정서적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은 겉은 아름다워도 역겨운 악취만 풍길 뿐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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