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작품 ‘하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4월 4일 06시 57분


1960년 영화 ‘하녀’의 한 장면. 사진제공|한국문예영화사
1960년 영화 ‘하녀’의 한 장면. 사진제공|한국문예영화사
실험정신 투철한 고 김기영 감독
계층문제와 욕망·불안심리 그려
유실필름 복원…2008년 칸 상영
2010년엔 임상수 감독 리메이크


1919년 10월27일 ‘의리적 구토’ 이후 시작된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는 수많은 걸작을 관객에게 선사해왔다. 당대 대중의 감성을 어루만지며 진한 감동과 웃음과 눈물을 안겨준 대표적 작품이 여기 있다. 창간 11주년을 맞은 스포츠동아가 감독, 제작자, 평론가 등 100인의 영화 전문가들에게 한국영화 100년, 그 최고의 작품을 꼽아 달라고 요청해 얻은 답변이기도 하다. 그 걸작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한다.

1960년대 한국영화 가운데 ‘하녀’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여전히, 널리 그리고 자주 회자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평단을 중심으로 재발견되면서 한국영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덕분에 2010년 복원된 버전이 재개봉해 젊은 관객에게 새롭게 소개되기도 했다. 같은 해 임상수 감독이 리메이크해 전도연과 이정재 주연으로 재탄생하며 새삼 화제를 모았다.

한국영화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꼽히는 고 김기영 감독이 1960년 내놓은 ‘하녀’는 당대 한국사회의 계급계층 문제를 들여다보는 동시에 인간의 노골적인 욕망과 불안 심리까지 접근한 작품이다. 이를 스릴러 장르로 완성하며 또 다른 시대를 열었다.

영화는 한 중산층 가정의 남편과 아내 그리고 가정부의 기묘한 동거를 큰 줄기로 삼는다. 방직공장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작곡가 동식(김진규)이 가정부(이은심)와 맺는 불의의 관계, 그사이에 놓인 가족들과 또 다른 인물들의 상황을 괴기하게 그린 작품이다.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개성의 영화이자, 전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영화”라는 설명과 함께 ‘하녀’를 한국영화 100년을 상징할 만한 작품으로 꼽았다. “장르적으로는 스릴러로 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추구한 완벽한 이야기 구조, 배우들의 연기가 복합적으로 조화된 작품”이라는 평도 덧붙였다.

성적인 욕망과 뒤따르는 살인까지 기괴한 이야기처럼 보이는 ‘하녀’는 실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이다. 1960년 11월9일자 동아일보는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줄거리 운반에 기를 쓰지 않고 인간의 심리에 카메라를 들여다 댄 실험정신을 저버릴 수 없다”고 분석했다. 또 “항상 이색적인 소재를 찾는 김기영 감독의 ‘식성’을 짐작케 하는 작품으로, 성격묘사가 거칠어 리얼리티를 찾는다면 불만스러울 수 있다”고도 썼다.

영화 ‘하녀’를 연출한 김기영 감독. 사진제공|한국문예영화사
영화 ‘하녀’를 연출한 김기영 감독. 사진제공|한국문예영화사

‘하녀’는 1950년대 후반부터 급격화한 한국 자본주의 발전, 그 안에서 살아간 여성의 문제와도 떼어내 볼 수 없다. 김선엽 평론가는 “사회에서 억압받고 소외된 여성 캐릭터의 불안과 집착, 당대 가족제도와 계층 문제를 다층적으로 연계시킨 수작”이라며 “영화를 장악하는 여주인공의 존재감, 주제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하는 미장센까지 탁월하다”고 평했다.

‘하녀’는 한때 일부 필름이 유실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녀’의 원본 복원을 주도한 인물은 세계영화재단을 이끄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다. “전 세계가 봐야 할 위대한 영화”라고 ‘하녀’를 설명한 그는 재단을 통해 필름 복원을 주도했고, 2008년 칸 국제영화제 ‘칸 클래식’ 부문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하녀’의 주제와 스타일은 1971년 ‘화녀’와 1972년 ‘충녀’로 이어졌다. 김기영 감독이 설계한 이 ‘여성 연작’은 2019년 현재 한국영화가 반추해 봐도 실험적이고 도전적이다.

‘화녀’와 ‘충녀’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은 지난해 CGV아트하우스의 ‘김기영관’ 개관을 기념한 자리에서 감독과 작업을 이렇게 회고했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지금 봐도 충격적인데 여러 규제가 심한 1970년대 그런 작품을 만들었다. 예술가는 앞서 가야 한다. 그는 정말 천재였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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