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뺨치는 열정-카리스마… 출판가 ‘그레이 크러시’ 열풍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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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머세대’ 겨냥 책 쏟아져
1차 베이비부머 은퇴 시기 맞아… 그레이 세대 매력과 꿈 주목
연륜과 지혜 젊은층에 어필… 건강-패션 등 실용서 시장도 꿈틀

그레이 크러시, 그레이 문학, 그레이 실용서….

1955∼1963년에 출생한 1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시기를 맞아 이른바 ‘그레이 세대’를 겨냥한 책이 서점가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레이 세대는 노년이지만 청년 못지않게 건강에 관심이 많고 왕성하게 문화활동을 즐기는 연령층. 이들을 겨냥한 ‘부머책’은 노년을 삶을 정리하는 시기로 바라보던 기존 시니어 도서와 달리 그레이 세대의 매력, 꿈, 젊음을 향한 열망을 당당히 드러낸다.

○ 그레이 크러시

부머책의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그레이 크러시’다. 20대 뺨치는 노년의 열정과 카리스마를 내세운다. 젊은 감각을 뽐내는 일본인 노부부의 생활을 그린 ‘아직 즐거운 날이 잔뜩 남았습니다’, 늦게 글을 깨친 할머니들의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혈기왕성한 할머니를 세운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이 대표적이다. 유튜브 스타 박막례 할머니의 책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청년 세대도 연륜이 주는 노년의 깊이에 주목한다. 100세 일본인 정신과 의사가 쓴 ‘백 살에는 되려나 균형 잡힌 마음’,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100년을 살아보니’, 판타지 문학 작가인 어슐러 K 르 귄의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는 세대를 불문하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김보경 지와인 대표는 “젊은층은 지식과 지혜를 갖춘 이들을 선망한다. 나이 듦이 주는 편견을 깨는 반전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 흔들리는 노년

청춘만 아픈 게 아니다. 흔들리는 노년에 주목한 책도 대세를 이룬다. 노인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쓴 ‘노인은 없다’, 미국의 두 석학인 마사 누스바움과 솔 레브모어 대담집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마스다 미리가 쓴 ‘영원한 외출’이 있다.

부머 세대의 관심이 인문·심리 분야로 확장된 건 최근의 일이다. 이호빈 다산북스 콘텐츠개발5팀장은 장수 시대와 연결지어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100세 시대가 열리면서 부머 세대도 청년 세대 못지않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다”며 “소통, 배움, 자존감 회복 등 이들이 원하는 지점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 그레이 실용서

노년의 라이프스타일에 특화된 ‘그레이 실용서’도 막 걸음마를 뗐다. 노년의 패션 팁을 전하는 ‘근사하게 나이 들기’, ‘프랑스 여자는 80세에도 사랑을 한다’가 눈길을 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시중의 라이프스타일 잡지나 도서는 대부분 젊은층을 위한 것”이라며 “경제력과 시간적 여유를 갖춘 노년에 특화된 실용서 시장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내다봤다.

건강 도서는 신체별로 분화되는 추세다. ‘백년 허리’ ‘백년 목’ ‘완전 소화’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나는 일흔에 운동을 시작했다’,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처럼 고령을 강조한 제목을 짓는 것도 트렌드가 됐다. 뇌 건강에 주목한 ‘백년 두뇌’나 치매 예방 워크북도 최근 판매량이 많다. 고미영 이봄 대표는 “예비 그레이를 위한 ‘마흔’ 키워드의 책과 ‘두 늙은 여자’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같은 그레이 문학 등으로 부머책 시장이 다각화되고 있다”고 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중년과 노년 사이의 정체성을 지닌 이른바 ‘그레이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부머세대#그레이 크러시#노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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