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세진]‘아마존 효과’ 인정한 韓銀… 아직 디지털경제 멀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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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산업1부 차장
정세진 산업1부 차장
지난해 10월 말 서울 강남의 한 클럽에서 젊은 남성이 5만 원짜리 지폐로 1억 원의 돈다발을 뿌려 화제가 됐다.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의 시대, 외환위기 수준인 10%대의 청년실업률 속에서 부잣집 아들의 기행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알려진 그의 정체는 가상화폐 투자자. 비록 철없는 행동이었을지언정 기존 경제시스템에선 인정받지 못하는 가상화폐 분야에서 벌어들인 돈이 실물경제 현장에 쏟아진 것이다.

최근 각광받는 직업인 유튜버의 성공 스토리도 우리의 경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다. 미국의 유튜브 분석 사이트 소셜블레이드는 한국의 유튜브 채널을 분석한 결과 5세 어린이가 부모와 함께 개설한 장난감 동영상 채널이 월 최고 34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평균 연봉이 3000만 원대 중반인 한국의 직장인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

가상화폐나 유튜브로 돈을 버는 사람은 아직 소수이니 주류 경제학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치자. 하지만 최근 한국은행은 ‘아마존 효과’를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면서 국내 물가상승률이 수년간 연평균 0.2%포인트가량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아마존 효과는 온라인 쇼핑 플랫폼의 확대로 유통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물가상승률은 낮아지고 도·소매업 취업자가 줄고 있는 현상이다. 물가상승률을 금리 인상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한은이나 일자리 확대에 목을 매는 정부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경제변수가 나타난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이런 디지털 경제를 담아낼 그릇을 제대로 만들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형 전자상거래의 확대로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라는 자충수 대신 사회안전망 확보와 이들이 진입할 새로운 서비스업의 숨통을 열어주는 게 먼저였어야 했다.

제조업의 주춧돌인 자동차산업 위기론의 본질은 한국 자동차업체들이 우버와 같은 자동차 공유 플랫폼에 예속된 저가의 공급업체로 전략할 것이란 시장의 우려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의 실적을 내고 있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지난해 말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신규 사업 분야로 진출하겠다고 나선 것도 시장의 미래를 내다본 선제적인 조치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자동차부품 업체들에 대출을 확대해 주는 게 지원책이라고 한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제조업에 묶인 노동과 자본이 신규 분야로 쉽게 진입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미래를 내다보는 정부의 역할이 아닐까.

디지털 경제의 선두주자인 미국은 과거 산업시대의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는 통계나 제도, 정부의 규제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인터넷에서 콘텐츠의 소비자이자 생산자로서 역할을 하는 이른바 ‘프로슈머’인 유튜버의 경제활동을 국내총생산(GDP)에 어떻게 포함하고 과세해야 할지, 우버와 같은 차량 중계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근로자들을 법으로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말이다.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면 시장 접근에 대한 규정을 만들기보다 사후 투명성을 관리하며 부작용을 보완하는 ‘규제 2.0’의 시대로 진입하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도 규제 완화를 놓고 진흙탕 싸움을 하는데 경쟁자들은 이미 그 이후의 단계를 고심하고 있다. 한국 산업생태계의 저변에도 분명 글로벌 추세에 맞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는 젊은이가 적지 않다. 정부의 역할은 성장동력을 직접 지정해주는 구시대의 산업정책이 아니다. 이미 싹튼 신산업 분야가 꽃을 피우도록 지원하고 이에 맞는 새로운 규제정책을 세우는 게 이미 다가온 미래 앞에 선 우리가 할 일이다.
 
정세진 산업1부 차장 mint4a@donga.com
#아마존 효과#디지털 경제#가상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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