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선동가 단눈치오, 예술이 광기가 되기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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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루시 휴스핼릿 지음·장문석 옮김/932쪽·4만2000원·글항아리

“100년 전 오늘, 프랑스에 종전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지만…오늘도 오래된 악령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파시즘은 애국주의에 대한 배신입니다.”

지난해 11월 파리 개선문에서 열린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행사. 단상에 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세계에 번지는 민족주의와 파시즘을 경고했다. 전 세계 85개국 지도자가 참여한 이 자리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참석했다. 마크롱의 연설을 중계하던 카메라는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을 번갈아 비췄다.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게 사실이라면 세계가 마주한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길 잃은 경제는 끝없는 불황을 예고하고, 극우파 정당의 부상은 극심한 충돌의 전조 같다. 100년 전 세계가 겪은 고통과 환멸을 기억하고, 냉정하게 그 원인을 따져야만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탐미주의 문학가이자 난폭한 선동가였던 가브리엘레 단눈치오(1863∼1938)의 일생을 추적한다. 단눈치오는 이탈리아가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휩싸이기 직전 등장한 인물이다. 당시 ‘미래파 선언’을 한 예술가 필리포 마리네티도 “쾌락을 주는 그의 재능은 가히 악마적”이라고 평했다.

저자는 이러한 단눈치오의 기록을 모아 새로운 서사를 창조한다. 수십 년을 오가며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인물의 여러 단면은 그가 단순한 악인이 아닌 치명적 매력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지금도 누구나 그 덫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단눈치오가 선동가로 변하는 과정을 보면, 파시즘은 예외적인 광기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니체, 바그너 등 유럽의 지적·사회적 삶에 뿌리내린 경향에 대한 겹겹이 쌓인 오독이 유기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임을 깨닫게 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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