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배극인]겨우 찾은 바이오산업 발목 잡은 금융당국

배극인 산업1부장 입력 2018-11-19 03:00수정 2018-11-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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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산업1부장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이 무너진다. 삼성도 어찌 될지 모른다.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2010년 3월 이건희 삼성 회장은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강한 위기감을 나타냈다. 그룹 차원에서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나섰고, 5대 신수종 사업의 하나로 선택한 게 바이오의약품이었다.

생물 세포나 조직을 배양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바이오의약품은 화학물질 합성의약품에 비해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좋다. 하지만 후보물질 탐색부터 승인까지 10년 이상 걸리고도 성공 가능성이 0.01%에 그치는 신약 개발은 기반 없이 뛰어들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회사가 바이오의약품을 위탁생산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2011년)와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Biosimilar)’를 개발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2012년)다. 반도체 등 극미(極微)산업에서의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우회로를 택한 것이다.

출범 10년도 안 된 두 회사의 성장은 놀라운 수준이다. 바이오로직스는 스위스 론자, 독일 베링거가 30년에 걸쳐 이룬 생산능력을 7년 만에 따라잡아 인천 송도에 세계 1위 생산능력을 갖췄다. 세계 3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 유럽 일본으로부터 원료의약품과 완제의약품 제조승인을 모두 받아냈고, 글로벌 제약사인 BMS와 로슈 등 25개 기업으로부터 36개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을 수주했다. 바이오에피스는 관절 류머티즘 치료제 등 바이오시밀러 판매 승인 최다 보유 업체다. 최근에는 일본 다케다제약과 손잡고 신약 공동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2015년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 규모는 2048억 달러(약 232조 원)로 전체 제약시장의 18.5%다. 앞으로 이 시장은 2025년까지 연평균 9.0%씩 성장해 4888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약 3700억 달러)를 훌쩍 웃도는 셈이다. 특히 바이오시밀러는 각국의 의료 예산 삭감과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 만료와 맞물려 관련 시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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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가 2015년 적자 기업도 상장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고 프레젠테이션 자료까지 만들어 바이오로직스 유치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거래소는 “수조 원대 상장 차익을 국내 투자자가 누릴 수 있다는 명분도 있다”며 압박했고, 결국 바이오로직스는 이듬해 미국 나스닥 대신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인 지난주,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6위(22조1300억 원)에 8만 소액주주가 투자한 바이오로직스의 주식 거래는 중단됐다.

매출 부풀리기나 원가 속이기가 아니라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른 선택의 문제였고, 스스로도 문제없다고 인정했던 회계처리를 간단히 뒤집은 금융당국의 속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이번 조치가 반도체 빼곤 볼 것 없어진 한국 경제가 모처럼 찾아낸 미래 먹거리에 어떤 재를 뿌릴지 조마조마하다.

바이오시밀러 산업도 최근 들어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시장을 선점하는 기업이 승리하는 초격차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다국적 제약기업들이 일제히 뛰어든 데다 오리지널 의약품 제조기업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미국 바이오기업 애브비는 지난해 세계에서 20조 원의 매출을 올린 관절 류머티즘 치료제 ‘휴미라’의 유럽 특허가 지난달 풀리자 가격을 최대 80% 내려 견제구를 날렸다. 금융당국에 발목 잡힌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개척이나 제휴, 공동 연구개발에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배극인 산업1부장 bae2150@donga.com

#바이오로직스#금융당국#애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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