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터졌네! 재치만점 공사장 가림막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5일 03시 00분


서초구 ‘디자인 행정’ 온라인 화제

1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재건축 공사장 가림막에 김대천 씨의 작품 ‘서초구구’가 부착돼 있다. 의인화된 비둘기를 통해 건축
 공사 현장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 덕에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재건축 공사장 가림막에 김대천 씨의 작품 ‘서초구구’가 부착돼 있다. 의인화된 비둘기를 통해 건축 공사 현장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 덕에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초구 공사장 근황.jpg’

지난달 말 이런 제목이 달린 게시물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내용물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앞에 설치된 공사장 가림막(가설 울타리)을 찍은 4장의 사진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동안 보던 뻔한 디자인의 가림막과 다르다” “재미있어서 유료 이모티콘으로 만들고 싶다”는 댓글이 잇달아 달렸고, 인터넷 사이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길이 약 60m의 이 가림막은 디자인, 건축허가, 안전관리, 감리 등 건축 진행 과정을 담고 있다. 누리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여기 등장하는 의인화된 비둘기와 이들이 ‘구구’ 소리를 내며 무심한 듯 내뱉는 대사들이다.

예를 들면 책상 앞에 앉은 푸른색 비둘기가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해 날개를 퍼덕이며 “심의심의구구” “허가허가구구”를 외치고, 맞은편에 앉은 안경을 쓴 근엄한 표정의 서초‘구구’청 비둘기가 고개를 끄덕이는 식이다. 비둘기를 캐릭터화했다는 점과, 울음소리를 이용해 만든 언어유희가 젊은층의 취향을 ‘저격’한 것이다.

이 가림막은 계원예술대 겸임교수인 김대천 씨(30)가 디자인했다. 김 씨는 지난해 1∼6월 서초구가 진행한 ‘공사장 가설 울타리 상상디자인 공모전’에 이 작품을 출품해 장려상을 받았다. 당시 ‘참신하고 재미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 씨는 건축이 이뤄지는 과정과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아이디어로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김 씨는 “평소 언어유희를 좋아해 서초구의 상징인 비둘기를 이용하되 가볍게 풀어내자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공모전 취지에 맞게 유머러스함을 담은 것이 잘 통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14일 서초구에 따르면 현재 서초구 38개 공사장에 김 씨의 작품을 비롯한 공모전 수상작과 서초구 자체 개발 디자인이 적용돼 있다. 이 중 김 씨의 가림막이 온라인에서 주목을 끌자 서초구는 예상을 못 했다는 듯 얼떨떨해하는 분위기다. 서초구는 내년에도 공모전을 또 열어 작품을 추가로 모집할 계획이다. 장재영 서초구 도시디자인과장은 “주민들이 기대하는 디자인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온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삭막한 도시에서 잠깐 웃을 수 있는 위트 있는 디자인을 계속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둘기를 캐릭터화한 가림막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것을 두고 서초구 직원들은 “수년 전부터 공들여온 공공디자인 사업이 다시 한번 주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서초구는 2015년 도시디자인기획단을 꾸리고 전문 인력을 운영하며 ‘도시디자인 강화 행정’을 펼쳐 왔다. 올해 부서 이름을 도시디자인과로 바꿨다. 인원은 도시계획, 조경, 미술 등 분야의 석사, 박사 등 전문가로 꾸렸다.

2016년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우산 형태의 대형 그늘막 ‘서리풀 원두막’, 지난해 강남대로에 전면 설치한 테이크아웃 컵 형태의 ‘서리풀 컵’ 등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이 작품들은 10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18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서리풀 원두막’은 영국의 친환경단체 ‘더 그린 오거니제이션’이 9월 17일(현지 시간) 터키에서 연 ‘그린월드 어워즈’에서 은상을 받았다.

서초구는 내년에도 도시 디자인 강화 정책을 확대한다. 지역 축제와 공원 이름 등에 들어가 있는 ‘서리풀’(상서로운 풀)을 활용한 디자인 사업 등이 논의되고 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평소 “자치구의 도시디자인 행정이 강화되면 공공 디자인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며 디자인 강화 정책을 독려하고 있다. 서초구 관계자는 “주민 수요를 만족시키고 도심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디자인을 지역사회 곳곳에 적용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공사장#가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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