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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기고/박찬성]회복할 수 없는 피해, 리벤지 동영상 유포 협박

박찬성 변호사·포스텍 상담센터 자문위원
입력 2018-11-02 03:00업데이트 2018-11-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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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성 변호사·포스텍 상담센터 자문위원
기술복제 시대에 원본이 갖는 의미에 관한 질문을 발터 벤야민이 제기했던 것이 벌써 80여 년 전의 일이다. 구태여 벤야민까지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인위적 통제를 더 이상 기대하기조차 어려운 무한복제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잊혀질 권리’를 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잊혀지기’ 쉽지 않다는 현실의 반영이다. 분별없는 영상 유포, 혹은 그 유포의 협박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끔찍한 공포와 모멸감, 굴욕감을 주게 될지는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본인 의사에 반하여 ‘리벤지 동영상’ 등 촬영물을 유포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특히 영리를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유포하면 형량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까지 늘어난다. 이에 대한 협박이나 미수범까지 처벌하게 정해져 있음은 물론이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형벌의 상한선이 다른 범죄에 비할 때 가볍다고 보기도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법조문의 내용보다는 실제 해석과 적용이다. 어느 판결에서 법원은 이렇게 판단했다. ‘피고인(가해자)은 내연관계에 있던 피해자와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동영상 촬영한 것을 빌미로 피해자에게 만남 지속을 요구하면서 협박하고, 위 촬영물을 피해자의 가족과 지인 약 30명에게 전송한 것으로 그 죄질이 매우 나쁘다.’

하지만 법원은 같은 사건에서 이렇게도 판단했다. ‘촬영 자체에 대하여는 피해자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의 처가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피고인을 용서하고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중략) 그 밖에 이 사건은 피고인이 불륜관계에 그치지 아니하고 피해자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점 등’을 종합하여 ‘피고인을 징역 6개월에 처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의 이수를 명한다.’

촬영 자체에 대해 피해자가 알았다는 점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고려되는 것이 타당할까. 법은 촬영 당시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경우라도 동영상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배포했다면 처벌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정작 피해자는 유포자를 용서하지 않았다. 이런 정황을 계속 참작해 준다면 용서받지 못할 영상 유포 관련 범죄가 세상에 과연 얼마나 남게 될까.

‘리벤지 포르노’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의 전형이다. 그런데 이처럼 간혹 법원의 판결서를 읽다 보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공감하는 전제에서 판단이 내려졌는지 다소간의 의구심이 들 때가 없지 않다. 중·장기적으로는 관련된 법 규정의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현행법하에서도 특단의 정당한 참작 사유가 없는 한 무관용의 원칙에 따라서 이를 처벌하고자 하는 사법부의 강력한 의지야말로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박찬성 변호사·포스텍 상담센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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